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26> 기근과 카니발리즘: 1615~1616년 중국 산동의 대기근
배고픔 못 견딘 사람들, 가족까지 잡아먹기도
[국제신문] 2011년 10월 27일
- 가뭄과 메뚜기떼 습격 탓, 식인행위 공공연히 이뤄져
- 참혹한 기록 생생하게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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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금을 세운 누루하치. |
만력 44년(1616) 정월 산동 제성현의 거인 진기유는 회시(會試)를 치기 위해 북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경계를 벗어나 20리 쯤 갔을 때 그는 길 근처에서 돼지나 개를 도살하듯 인육을 베어 먹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이것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고, 지나치는 사람들도 이를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모골이 송연해진 그가 한나절을 걸었을 때 한 늙은 할미가 죽은 아이를 삶으면서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궁금해졌다. "이미 아이를 먹으려고 하면 그만이지, 또 우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할미가 말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입니다. 아이를 버려두려고 하니 다른 사람에게 먹히고 말 것이니, 차라리 제가 먹어 배를 채우려고 합니다."
1615년과 그 이듬해 중국 화북의 광범위한 지역에는 가뭄과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극심한 기근이 들었다. 피해가 가장 심했던 곳은 산동이었다. 먹을 것을 찾지 못한 굶주린 사람들은 마침내 서로 잡아먹기에 이르렀다. 진기유는 어미가 자식을 삶아먹는 참담한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황제에게 '기민도(飢民圖)'를 그려 올렸다. 북송 정협이 신종에게 올린 '유민도'의 오랜 전통을 따른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카니발리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이 과장된 표현이라고 쉬이 외면하고 싶지만, 당시 기록들은 너무나 생생하게 그 광경을 전하고 있다. 카니발리즘의 원인은 기근만은 아니었다. 실제 인육을 좋아했던 특이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의 역사 기록에서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때론 질병 치료를 위해 혹은 복수를 위해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들도 보게 된다. 그렇지만 식인행위가 광범위하면서도 공공연하게 이뤄진 대부분의 경우는 극심한 기근 상황이었다. 소빙기 기후변동의 영향이 현저했던 17세기 전반은 특히 심했는데, 1615년과 1616년 산동의 대기근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산동 청주부의 한 관원은 살아 있는 사람을 도살하여 아침저녁의 식량으로 삼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했다. "배를 갈라 심장을 도려내고 사지를 잘라 육회를 만든다. 사람의 심장은 맛이 좋은데 어린애의 맛은 더욱 좋다. 심지어는 인육을 시장에서 팔기도 하는데 매 근에 동전 6문이다. 인육을 집에 염장하여 예상치 못할 수요를 대비하기도 하고, 사람의 머리를 쪼개 불을 때어 익혀서 그 골수를 빨아먹기도 한다. 굶주려 막 엎어지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 사람이 칼질을 해서 곧바로 없어진다. 만약 인육이 모두 없어지면 잡아먹을 생각에 다른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곤 한다."
명말 카니발리즘은 기근이 잦았던 산동에서 특히 많았다. 1615년과 1616년의 기근과 식인 습속에 주목했던 한 사람이 산동 치천현의 필자엄이다. 저명한 관료이자 학자였던 그는 '재침관의'라는 구황서를 저술할 때, '인류탄식(人類呑食)'이라는 편을 두었다. 부모자식, 형제, 부부가 서로 잡아먹어 "골육의 정마저 사라진" 끔찍한 상황을 묘사했다. 카니발리즘은 분명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기억해야할 중요한 사건이 이때 만주에서 발생했다. 누르하치에 의해 후금이 건국된 것이 바로 1616년이었다. 그 전해부터 요동과 만주도 재해와 기근이 심상치 않았다. 새로이 왕조를 건립했지만 누르하치는 그의 백성들에게 각기 먹을 것을 구하러 가라고 명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일한 시기 조선과 일본에도 이상저온과 기후불순으로 극심한 기근이 있었다. 당시의 기근은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동시적이었던 것이다.
참혹한 카니발리즘에 경악했던 청주부의 그 관원은 "부모를 잡아먹는 짐승들로 가득하니 천하가 대낮에도 캄캄하다"고 당시의 충격을 요약했다. 그러나 그것은 20여 년 뒤에 연이어 발생한 가뭄과 대기근에 비하면 아직은 시작에 불과했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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