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25> 유민도(流民圖), 기근의 참상을 그리다
함께 아파해야 할 이웃의 모습
[국제신문] 2011년 10월 20일
일본의 남경대학살로 많은 중국인들이 유리걸식하는 비참한 모습을 그린 장자오허의 '유민도'의 일부.
"시냇가 허물어진 집 뚝배기를 엎어 놓은 듯, 겨울바람에 이엉 걷혀 서까래만 앙상하네. 묵은 재에 눈 덮인 아궁이 차디차고, 체 눈처럼 뚫린 벽에 별빛이 스며든다." 정조 18년(1794) 11월 정약용은 기근에 시달리던 적성, 마전 등 네 고을을 염찰(廉察)하는 임무를 맡았다. 현재의 파주와 연천 일대인 이들 고을에서 암행어사 정약용이 마주한 풍경은 충격이었다. 그때의 참담함을 노래한 것이 위의 구절로 시작되는 '적성의 시골마을에서 짓다'라는 시이다.
정약용은 비참한 백성들이 천지에 가득한데도, 구중궁궐의 임금은 모두 살필 수 없음을 개탄했다. 그렇기에 "먼 옛날 정협(鄭俠)의 유민도(流民圖)를 본떠서, 새로이 시라도 한 편 베껴 임금님께 돌아갈까"라고 끝을 맺었다.
'유민도'는 북송 신종 때 감문(監門) 정협이 극심한 기근에 떠도는 백성들의 처참한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올린 것에서 유래한다. 그림의 효과는 컸다. 왕안석의 신법(新法)이 진행된 지 5년 째였던 그 해(1074), 신랄한 비판의 '글'에도 흔들림 없던 신종은 마침내 실패를 인정하고 신법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정협의 유민도는 기근의 참상을 군주에게 알리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유민도의 전통은 깊다. 심각한 기근이 들 때면 신하들은 정협의 유민도를 언급하며 군주의 자성을 촉구하곤 했다. 선조 9년(1576)께 김성일이 '어미가 자식과 이별하다'라는 시에서 "그 누가 유민도를 다시 베껴서, 임금에게 바치어 촛불이 되게 하랴"라고 노래한 것도 그 일면을 보여준다.
17세기를 전후해서는 유민도가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 '그림'으로 올려졌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와 그 이듬해인 1593년과 1594년, 조선에는 백성들이 인육을 먹는 극심한 기근이 있었다. 이때 유민도를 올린 사람이 있었는데, 어미가 죽었음에도 젖을 물고 있는 아이, 자식을 버려 나무뿌리에 묶어 둔 어미, 나뭇잎을 따서 배를 채우는 사람, 마른 해골을 씹는 사람 등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숙종 32년(1706) 강원도감진어사 오명준이 '기민도'를 올린 일이 있었으며, 영조는 지방관들에게 정협의 유민도를 본받아 그림을 그려 올리게 했다.
중국에서 유민도는 기근이 극렬했던 명말에 특히 많이 올려졌다. 만력 22년(1594) 급사중 양동명은 황하가 범람하여 하남 등에 대수재가 들자 목숨을 걸고 '기민도설(飢民圖說)' 14폭을 올렸다. 전 가족이 목 매어 죽고, 인육을 먹고, 시체는 거리를 메운 처참한 장면들은 구중궁궐에 박혀 정치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만력제마저도 놀라게 했다. 이때부터 명나라가 망할 때까지 관원과 사대부들은 기근의 참상을 그림으로 그려 최고 권력자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려 했다.
암행어사를 다녀온 이듬해 정약용은 더 직접적으로 굶주린 백성을 읊은 '기민시'를 지었다. "말라비틀어진 목은 따오기 같고, 병든 육신은 주름져 닭살 같은" 기민들. 그들은 국가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했다. 정약용은 관리들의 탐학(貪虐)에 분노했다. 이런 세태를 정면으로 비판했던 그는 말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그림〉은 1943년 4년 작업 끝에 장자오허가 완성한 '유민도'다. 빈곤과 기아, 군벌과 일본의 폭력에 신음하는 중국인을 그린 이 그림은 정협의 유민도라는 오랜 전통 위에 서 있다. 장자오허는 그린 동기를 "진실된 마음으로 비분함을 표현하려 했다"고 했다. 시대를 아파하고 분노한 것이다. 그림을 들여다 보자. 2011년,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에서, 방패에 찍혀 시퍼렇게 멍든 서울 포이동 할머니의 손에서, 우리가 함께 아파해야할 우리 이웃의 모습이 그 속에 있지 않은가?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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