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제24회 소빙기와 복식, 1640년대 런던의 겨울 패션

블루트레인 2011. 12. 10. 11:29

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24> 소빙기와 복식, 1640년대 런던의 겨울 패션
마스크·모피로 추위 막고 멋까지…

 

[국제신문] 2011년 9월 29일

 

 

벤첼 홀라르의 작품 '겨울'(1644)

 

 

'그림'에는 패션 화보를 촬영하듯이 한 여인이 서 있다. 멀리 도시의 굴뚝들에서는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 나오고, 코르셋을 한 여인은 몸을 칭칭 감았다고 할 정도로 무척이나 두텁게 옷을 껴입고 있다. 무엇보다 눈을 사로잡는 것은 머리를 천으로 감싼 것도 모자라 눈과 입을 제외하고는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모습이다. 가장무도회라도 가는 것일까?

벤첼 홀라르(Wenzel Hollar). 우리에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보헤미아 프라하 출신인 그는 프랑크푸르트와 쾰른에서 에칭(etching: 부식동판화) 판화가로 활동했다. 1637년 런던에 정착한 그는 17세기 런던의 다양한 모습들을 동판화에 담았다. 그를 사로잡은 주제 중 하나는 여성들의 복식이었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주제로 여성들의 패션 변화를 그림으로 남겼는데, 이 그림은 1643년 작품 '겨울'이다.

이제 화가가 왜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배경으로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런던에 몰아친 겨울 추위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난방을 위한 석탄 사용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1640년대의 한랭한 날씨는 주목할 만하다. 알프스에서는 확장되던 빙하의 전진속도가 빨라져 마을을 위협하여 곳곳에서 액막이 행사를 행하고, 지리산에 올랐던 허목이 음력 8월이면 겨울처럼 눈이 내린다고 했던 것이 이때 즈음이었다(3회에 소개).

여인이 목에 두른 것은 모피이다. 유럽에서 모피에 대한 수요는 16세기 이후 급증하여 북아메리카와 시베리아 등에서 생산되는 모피가 유럽 시장에 대량으로 흘러들었다. 모피에 대한 광풍을 추동한 것은 사치에 대한 열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소빙기의 혹한이었다. 홀라르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에도 북아메리카에서는 비버의 모피를 둘러싸고 인디언와 유럽인 사이의 치열한 교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치마를 잡은 팔에 걸쳐있는 것은 모피로 만든 '머프'이다. 머프는 추운 겨울 손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털가죽 안에 솜을 넣어 두툼하게 만든 것으로 양손을 넣어 사용한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이래 16세기 후반 유럽에 보급돼 소빙기가 절정을 이루던 17세기 크게 유행했다. 영국에서 머프는 원래 여성용으로 사용되었는데, 1662년 겨울 템스 강이 얼어붙는 혹한 때는 남성들도 여성의 이 패션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 해는 결빙된 템스 강 위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선보였던 해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서는 여성들의 장옷(長衣)이 유행했다. 온 몸을 감싸고 얼굴을 가린 런던 여인의 모습에서 조선시대 장옷 입은 여인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근이 잦았던 17세기, 굶주린 백성들이 무덤을 파헤쳐 시체의 옷을 벗겨 입는 일이 적잖았다. 가난한 이들에게 고통은 굶주림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장옷의 유행을 여성들에 대한 유교적 예속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소빙기 혹한이 더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림 속 여인은 신체 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그녀의 신비로움을 돋보이게 하는 마스크는 가장무도회가 아니라 매서운 추위를 막기 위한 것임을 이제는 안다. 홀라르가 이 그림을 그렸던 그 때, 영국은 내전에 휩쓸려 있었다.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 왕당파와 의회파의 갈등이 첨예했다. 이런 정치적 혼란을 피해 홀라르는 이듬해 안트베르펜으로 이주했다가 8년이 지난 뒤에서야 런던으로 되돌아 왔다.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의 피바람이 몰아치던 그때 동아시아에서도 거대한 역사적 격변이 진행되고 있었다. 명청교체, 바로 이 그림이 그려진 다음 해의 일이다. 그것은 1640년대 초반의 '믿을 수 없는 대기근'으로부터 말미암았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