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기후변동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본 연구는 바다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았다. 기후변동(天)은 해양환경의 변화(海)를 초래하고, 이것은 인류의 역사(人)에 영향을 주었다. 나는 이것을 ‘천․해․인(天․海․人)’의 관점에서 확인하려 했다. 이를 위해 주목한 것이 동아시아 ‘청어’의 역사였다.
오늘날 거의 사라진 청어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였다. 청어는 ‘어느 때’부터인지 중국과 일본의 바다에도 대량으로 나타나 왕성한 청어어업을 일으켰다. 이러한 배경에는 ‘소빙기’라는 기후변동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에서 사용했던 ‘靑魚’라는 명칭이 중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는 16세기 후반 이전에는 바다청어(herring)를 가리키는 말이 없었다. 그 이전에는 청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민물의 ‘靑魚’와 구분하기 위해 ‘海靑魚’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나아가 이것이 조선의 바다로부터 왔다고 하여 ‘新魚’, ‘朝鮮魚’라고도 했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청어어업이 시작된 것은 17세기부터였다. 청어에 대한 정보를 조선으로부터 받아들인 일본은 청어를 ‘高麗鰮’이라고도 했다. 또한 청어를 의미하는 ‘鯡’와 ‘鰊’이라는 한자가 있었지만, 18세기부터는 조선에서 사용하던 ‘靑魚’라는 한자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
실제 조선의 기록은 16세기 후반부터 청어가 대량으로 중국의 바다로 이동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중국의 방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어가 ‘너무 흔하여 물리게 먹을 지경’이었고, ‘靑魚粥’으로 식사를 대신할 정도가 되었다. 일본도 북해도 진출과 더불어 청어어업이 대성황을 이루었다. 北前船 교역을 통해 魚肥로까지 널리 유통되면서 농업혁신과 상품경제의 발전을 추동했다. 17세기 이후, 동아시아 3국의 청어어업의 발전은 ‘소빙기’의 혜택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천․해․인(天․海․人)’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가 대단히 유용함을 증명한다.
[맺음말]
소빙기의 기후변동은 해양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이러한 해양환경의 변화는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른바 기후변동(天), 해양환경변화(海), 역사의 영향(人)이라는, ‘천․해․인’의 관점에서 이 글은 접근했다. 이를 위해 주목한 것이 청어의 역사였다.
동아시아 청어의 역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청어의 풍흉은 기후변동의 영향을 받았다. 청어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물고기였다. ‘深山窮谷’에서도 물려서 다 먹지 못할 정도로 풍부했다. 다만 그 풍흉이 극심했는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후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15세기 중반의 한랭기를 겪으면서 청어의 산지는 급증했다. 16세기 후반과 18세기 초의 극심한 한랭기에는 해수저온현상으로 동해의 어류가 대거 서해로 유입되었다. 이때 서해의 청어가 산동과 요동의 바다로 옮겨가기도 했다. 18세기 후반, 상대적으로 온난했던 때는 청어가 급감하여 균역법의 정상적인 시행을 위협했다. 18세기 말부터 회복되었던 청어는 19세기 중반이후에는 온난화와 더불어 차츰 사라져갔다. 이처럼 청어의 성쇠는 기후변동에 따라 춤추었다.
동아시아 청어의 박물학에서 조선청어는 매우 중요했다. 조선에서 사용했던 ‘靑魚’라는 명칭이 중국과 일본에 그대로 영향을 주었다. 조선은 고려 말부터 청어라는 말을 사용한 반면, 중국에는 바다청어에 대한 명칭이 없었다. 이전에는 바다청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6세기 후반에야 ‘靑魚’라는 말이 등장하여 17세기를 거치면서 정착했다. 일본은 청어를 가리키는 ‘鯡’와 ‘鰊’이라는 한자가 있었지만, 18세기 초에는 오히려 조선에서 사용하는 ‘靑魚’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17세기를 전후한 시기가 동아시아 3국의 청어어업에 거대한 분기점이었음을 의미한다. 한랭한 날씨로 한류성어종인 청어가 조선 서해를 넘어 중국의 바다에 대거 유입되면서, ‘새로운 물고기’에 대한 명칭이 필요했던 것이다. 일본도 17세기에 본격적으로 청어어업이 개시되면서 이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조선에서 받았다. 그렇기에 한때, 청어를 중국에서는 ‘新魚’, ‘朝鮮魚’, 일본에서는 ‘高麗鰮’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관명이 청어를 ‘조선물고기’라고 했던 것은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동아시아 3국의 청어어업 발전은 소빙기의 ‘혜택’이었다. 17세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중국과 일본에서도 청어어업이 중요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산동, 직예, 요동의 연해에 청어가 몰려들어 ‘극히 천하여 먹지 않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고, ‘靑魚鬻’으로 식사를 대신할 정도였다. 일본은 홋카이도 진출과 더불어 청어어업이 대성황을 이루어 고양이먹이나 魚肥로도 사용되었다. 동아시아 3국은 풍부한 청어를 바탕으로 상품교역을 발전시켰다. 조선에서 청어는 균역법 시행의 중요한 재원이었다. 일본은 北前船 교역을 통해 농업혁신과 상품경제의 발전을 추동했다. 이러한 청어어업의 발전은 소빙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소빙기의 한랭한 기후는 농업생산에 ‘위기’를 초래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청어와 같은 한류성어류어업 왕성한 발전을 불러왔던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청어의 흥산과 소멸은 지구적인 환경변화의 일부분이었다. 17세기부터 3백여 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청어어업은 대단히 흥성했다. 19세기 후반부터 동아시아의 바다에서 소멸하기 시작하던 청어는 20세기 중반에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소빙기에서 온난기로의 지구적인 기후변동을 반영하고 있다. 동아시아 청어의 역사는 기후변동이 해양환경에 영향을 주고, 이것은 다시 인간의 역사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장기지속적인 환경변화를 바탕으로 했을 때, 역사연구는 보다 다채롭고 풍부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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