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21> 발트해의 결빙, 북방전쟁을 가름하다
소빙기 한파 덕에 스웨덴 절정기 이룩
[국제신문] 2011년 9월 8일
1658년 얼어붙은 바다(리라벨트)를 건너 덴마크를 침공하는 스웨덴 군대를 그린 그림.
독일 출신 화가 요한 필립 렘케(1631~1711)가 그렸다.
1658년 1월 30일 마침내 명령이 떨어졌다. 국왕 칼 구스타브 10세의 명령을 받은 스웨덴 병사들은 눈 덮인 하얀 얼음 위를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 그들이 밟고 있는 얼음 밑으로는 깊고 푸른 바다가 출렁대고 있었다. 그들은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스웨덴과 덴마크의 전쟁은 한 해 전에 시작되었다. 17세기 북유럽의 강자로 성장하던 스웨덴은 북방의 패권을 놓고 폴란드, 리투아니아, 러시아 등 주변국가와 계속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러한 '북방전쟁'의 중심에 칼 구스타브 10세가 있었다. 1657년 스웨덴의 폴란드 침공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을 때 덴마크는 선전포고를 하고 브레멘을 점령해버렸다. 덴마크와의 결전을 바라고 있던 칼 구스타브 10세에게 이것은 좋은 구실이 되었다. 스웨덴 군대는 곧바로 본토인 유틀란트 반도로 진입하여 덴마크를 유린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덴마크의 핵심전력은 해군이었다. 수도인 코펜하겐은 젤란트 섬에 있었고, 리라벨트('작은 해협'이라는 뜻)와 스트로벨트('큰 해협'이라는 뜻)가 침공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행운은 덴마크를 비켜갔다. 그해 12월부터 한파가 몰아쳐 바다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듬해 1월 29일에는 병사는 물론이고 화물을 가득 실은 마차도 지날 정도가 되었다.
칼 구스타브 10세가 얼어붙은 리라벨트를 건너게 한 것이 그 다음 날 아침이었다. 펜 섬에 건너간 스웨덴 군대는 2월 5일 다시 결빙된 스트로벨트를 건너 롤란트와 팔스터 섬을 거쳐 8일에는 젤란트 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소빙기 동안 바다가 얼어붙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덴마크 주변의 발트 해가 결빙했던 1657년 겨울 라인 강, 엘베 강 등 유럽의 큰 강들이 꽁꽁 얼어붙었다. 조선은 1655년과 1659년 봄에 강원도의 바다가 얼어 조정을 놀라게 했다. 중국은 동정호, 태호 등 아열대의 강과 호수는 물론이고 강소성 북부의 바다가 결빙한 사례를 쉬이 볼 수 있다.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 전쟁을 치른 사례가 동아시아에는 없었을까? 동진시대 모용황의 고사가 대표적일 듯하다. 336년 전연(前燕)의 모용황은 자신에게 반기를 든 동생 모용인을 치기 위해 얼어붙은 발해를 건너 요동으로 진격했다. 3백여 리의 바다를 건너온 모용황의 기병 앞에 모용인의 군사는 전의를 상실했다. 몽골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던 16세기 중반, 발해가 단단하게 얼어붙으면 몽골은 바다를 밟고 침공하곤 했다. 이에 대한 방어책은 역시 얼음 깨기였다. 혹한의 겨울에는 얼어붙은 바다도 군사적 침략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모용황의 기병을 맞닥뜨린 모용인의 군사처럼, 얼어붙은 해협을 건너 물밀듯이 코펜하겐을 포위해오는 스웨덴의 병사들 앞에서 덴마크의 군대는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굴복했다. 그 결과 2월 26일 로스킬레 조약이 체결되어 덴마크는 현재 스칸디나비아 전체의 영토를 스웨덴에게 넘겨주었다. 이로써 칼 구스타브 10세는 북방전쟁의 패자가 되었으며, 스웨덴은 그들의 사상 최대의 영토를 획득한 절정기를 구가했다.
흥미롭게도 58년 뒤에도 같은 시도가 있었다. 1716년, 칼 12세는 스웨덴 본토와 젤란트 섬 사이 준트해협을 건너 코펜하겐을 치려고 했다. 바다는 꽁꽁 얼어붙어 진격 명령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행운이 스웨덴과 함께하지 않았다. 명령이 내리기 직전 태풍이 휘몰아쳐 얼음이 파괴되어 버렸고 전쟁은 중지되었다.
17세기 발트 해의 결빙은 북유럽 국가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바다 위를 걸어서 건넌 것은 결코 모세와 같은 '신의 기적'이 아니었다. 소빙기라는 지구적인 기후변동의 힘이었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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