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19> 병자호란, 그들은 왜 겨울에 침입했을까?
천연요새 압록강 결빙땐 무용지물
[국제신문] 8월 25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최종병기 활'. 포스터에 '1636,
병자호란'으로 되어있는데 정확하게는 서력기원으로 1637년이다.
그들의 말발굽 소리는 질풍보다 빨랐다. 청의 침략소식이 처음으로 조정에 전해진 것은 1637년 1월 7일. 이틀 뒤 급히 강화도로 빠져나가려던 인조 일행은 청의 군대가 이미 홍제원에 도착하여 길을 끊었다는 소식에 경악한다. 인조는 말머리를 돌려 결국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들은 국경을 넘은지 단지 닷새 만에 조선의 심장부를 압박하여 몽진할 기회마저 빼앗아버렸다.
청의 군대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넌 것은 1637년 1월 4일. 전쟁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한 해 전 후금에서 대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황제에 오른 홍타이지는 조선을 침공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 시기는 분명했다. 한겨울, 강이 꽁꽁 얼어붙을 때.
얼핏 강의 결빙과 전쟁은 그다지 관계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10년 전의 정묘호란, 그리고 훨씬 이전 고려 말 홍건적 나하추의 침략도 모두 한겨울이었다. 왜 그들은 추운 한겨울에 침입했을까? 압록강 때문이다. 압록강은 북방민족이 침입해 올 때 그 자체로 천연의 요새이자 거대한 '장성'이었다. 국방의 최전선 압록강이 얼어 거대한 평지가 되면 천혜의 방어선이 일시에 무너지게 된다. 후금과 대치하고 있던 조선에서 압록강의 결빙은 군사적 침략의 신호탄이었다. "합빙(合氷)의 시기가 임박했으니 병화(兵火)가 반드시 멀지 않다"라는 광해군의 말은 압록강의 결빙이 후금 침략의 전조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기록들을 살펴보면 조선의 방어체제가 압록강 결빙에 얼마나 민감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강이 이미 견고하게 얼어붙어 남북의 경계가 없으니 강 연안의 방비가 급한 것은 이전에 비해 백배나 됩니다." "압록강 일대가 얼어붙은 후에는 하나의 평지가 되니 철기(鐵騎)가 달려오는 것이 질풍보다 빠릅니다." 압록강의 결빙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공포였다. 이런 이유로 조선의 후금에 대한 방어는 압록강 결빙에 맞추어져 있었다.
임진왜란 중이던 1595년 누르하치의 침공을 염려한 조정은 압록강 방어에 대한 대책이 의논되었다. 비변사는 얼어붙은 압록강에 구멍을 뚫고 그곳에 가지 많은 나무를 겹겹이 세워 얼게 하는 이른바 '녹각성(鹿角城)'을 설치할 것을 제기했다. 선조는 얼음을 떠서 담처럼 쌓아 놓는 빙장(氷墻)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철기의 기동성을 없애기 위한 방안이었다. 정묘호란을 전후해서는 압록강 결빙에 맞추어 경상, 전라, 충청의 하삼도(下三道) 병사를 국경에 진주시켰다가 봄이 되어 압록강이 풀리면 다시 귀농(歸農)시켰다. 쉽게 말해 압록강이 얼어붙으면 군사들을 모았다가 압록강이 풀리면 돌려보내는 방법이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직전에도 이 방법이 강구되었다. 1월 5일까지 하삼도 군사들을 압록강에 진주시키려고 했지만, 그 하루 전에 청의 군대는 이미 강을 건너버렸다.
이처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한겨울에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병자호란 때 압록강을 건넌 청의 군대는 단지 닷새 만에 한양을 위협했다. 이것을 가능케 한 배경에는 겨울의 매서운 추위로 인한 강의 결빙이 있었다. 당시 어느 강까지 결빙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홍타이지의 본대가 임진강에 이르렀던 1월 17일, 혹한으로 강물이 꽁꽁 얼어붙어 부대가 그 위를 그대로 통과했다. 홍타이지는 "상서로움이 연거푸 이르니 모두 하늘의 뜻이다"라고 하여 자신의 득의를 표현했다.
병자호란 석 달 전 이념과 명분만 더 높은 조정에 최명길은 "강물이 얼게 되면 화가 목전에 닥칠 것임"을 경고했다. 압록강 결빙이 후금침략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던 조선에 있어 소빙기의 겨울 혹한은 무엇보다 큰 위협이었다. 예고된 전쟁, 조선의 지배자들은 무엇을 준비했던가? '강이 얼고 화가 목전에 닥쳤을' 때 고통 받는 것은 오롯이 백성들이었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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