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제17회 안용복과 독도, 바다를 보라

블루트레인 2011. 12. 10. 03:06

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17> 안용복과 독도, 바다를 보라
섬에서 일본 어민 내쫓은 그의 절규 들리지 않는가

 

[국제신문] 2011년 8월 11일

 

 

1830년대 하세가와 셋단의 '에도 명소 그림 모음집'에 실린 해삼을 가공하는 그림. 일본은 해산물 국제무역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당시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

 

 

"옛날 동래 수군 안용복은 홀로 왜정(倭庭)에 들어가 울릉도를 놓고 다툼에 왜놈 추장을 마주하여 거리낌 없이 따져서 조금도 꺾이지 않았으니 왜놈들이 다시는 울릉도를 넘보지 못했다. 만약 이런 인물로 하여금 변방을 지키게 했다면, 도리어 한고조(漢高祖)의 용맹한 장수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정조는 안용복의 기개와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1696년 안용복은 다시 바다를 건넜다. 3년 전 울릉도·독도 영유권을 당당히 인정받고 돌아온 그를 기다렸던 것은 '월경(越境)'이라는 죄목. 그는 대마도의 사주를 받은 동래부사에 의해 형벌을 받고 2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어야 했다. 이해 봄 안용복은 울산에서 10명의 사람을 규합하여 울릉도로 건너갔다. 울릉도와 독도에서 조업 중이던 일본 어민들을 내쫓다.

17세기 후반 동해의 절해고도가 양국 어민들이 대립하는 장소가 되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당시 영토분쟁은 동해뿐 아니라 서북변경과 서해에서도 있었으며, 그것이 소빙기 기후변동과 무관하지 않음을 지난 회에 언급했다. 1696년도 마찬가지다. 한 해 전에 시작된 기근은 이 해부터 절정으로 치달아 1699년까지 계속되어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 현종 대의 '경신대기근'과 더불어 조선시대 최대의 기근으로 일컬어지는 '을병대기근'이 이때 있었던 것이다. 동일한 시기에 일본에도 대기근이 있었다. 한랭한 기후가 계속되면서 '엔로쿠대기근'이 발생하여 수십만 명의 아사자를 낳았다. 울릉도에서 조우한 양국 어민들의 절박함을 짐작할 수 있겠다.

더 중요한 것은 어획물 자체다. 주된 어획물인 전복과 해삼은 단순한 해산물이 아니었다. 동아시아 3국에서 모두 진귀한 고가상품이었고, 특히 중국에서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1684년 이후 청의 상선들이 일본 나가사키에 폭주하자 결제대금인 구리가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이를 대신할 수단으로 에도막부가 눈독을 들였던 것이 바로 전복과 해삼이었다. 1698년 에도막부가 전복과 해삼을 공식 수출품으로 적극 장려한 이후 이 두 해산물은, 1764년에 덧붙여진 상어지느러미와 더불어, 대중 수출에 가장 중요한 상품이었다.

나가사키를 통한 거대한 동아시아 해산물 유통망이 형성되고 있던 시기에 울릉도와 독도에서 어업분쟁이 발생했던 것이다. 소빙기 동안 바다는 생존에 쫓긴 사람들에게 탈출구였고, 국가적 차원에서 새로운 부의 원천이었다. 안용복은 단순한 어부라기보다는 해산물 무역에 깊숙이 관여했던 상인이기도 했다. 그가 분노한 것은 우리의 '부의 원천'이 남의 나라에 유린당하는 현실이 아니었을까?

음력 8월 안용복은 강원도 양양으로 되돌아왔다. 그에 대한 조선정부의 처분은 사형. 그나마 몇몇 대신의 변호로 1등급 감하여 유배형에 처해졌고, 그곳에서 그는 울분에 죽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그것은 바다를 두려워하고 바닷사람을 멸시하고 바다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팽개친 조선이라는 문명 자체였다. 안용복의 재능을 안타까이 여긴 정조마저 끝내 바다의 잠재력을 보지 못하지 않았던가.

독도를 둘러싼 분쟁이 격화되는 오늘날, 정치인들이 기껏 하는 것이 독도에서 사진이나 찍고 오는 것이라니 통탄스럽다. 바다 문제를 전담하던 해양수산부는 어디로 갔는가? 세계 5위 해양대국(Ocean G 5)의 꿈은 그 누가 기억하는가? 바다로 가야할 배를 산맥을 뚫어 산으로 올려 보내면서 국가발전이라 강변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우리가 봐야할 것은 독도가 아니다. 독도를 품고, 우리 땅과 우리 문명을 감쌌던 바다 자체이다. 부산 좌천동 사람 안용복. 아직도 그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바다, 바다를 보라!"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