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15> 기근과 반란- 동요하는 동아시아
한랭현상 강해질수록 농민반란 극심
[국제신문] 2011년 7월 28일
16세기 초 중국의 주신이 그린 유민도(부분·미국 호놀룰루미술학원 소장)
"신의 고향 연안부는 작년 1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초목이 말라 타들었습니다. 팔구월에 백성들은 산에 있는 쑥을 다투어 캐어서 먹었는데 그 낟알이 겨껍질 같고, 그 맛은 쓰고 떫은데 그것을 먹고서야 겨우 연명하여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10월이 지나니 쑥도 다하여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습니다. 나무 중에서는 느릅나무 껍질이 조금 나아서 다른 나무껍질과 섞어서 먹었는데, 또한 그 죽음을 조금 늦출 수 있었습니다. 해가 다하고 나무껍질마저 다하자 또 그 산에 있는 돌덩이를 캐어서 먹었습니다. 돌은 성질이 차갑고 맛은 비리한데 조금만 먹어도 문득 배가 부르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배가 부어올라 아래로 처져서 죽습니다. 돌을 먹고 죽기를 달게 받아들이지 않는 백성은 서로 모여서 도적이 되었습니다."
섬서성 안새현 출신의 마무재가 황제에게 올린 목격담은 참담했다. 그가 말하는 '작년'은 무진년(1628), 정묘호란 이듬해이다. 또한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의 공식적인 통치 원년이다. 그의 보고는 숭정제가 자신의 통치기간에 겪게 될 긴 고난의 여정을 알리는 서막과도 같았다.
숭정제가 황제에 등극했을 때 명조가 처한 상황은 말 그대로 '망조(亡兆)'였다. 만력제에서 천계제로 이어지는 동안 행정조직은 극도로 이완되어 있었다. 당파 간 대립은 격렬했으며 재정은 고갈되어 관원들의 봉급도 제때 지급하기 어려웠다. 동북방에서 무섭게 성장한 후금은 요동을 차지하고 내지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고 있었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더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기근과 반란이었다. 그 불길은 마무재의 고향 섬서성 북부에서 시작되었다.
정묘호란이 있었던 그 해, 섬서성에 가뭄이 들어 백성들은 생존의 한계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관원의 수탈이 계속되었고 분노한 농민들은 결국 반란을 선택했다. 왕이에 의해 지펴진 반란의 불씨는 이듬해 인근의 왕가윤, 고영상 등이 봉기에 동참하여 섬서성 전체로 번졌다. 명조를 멸망시킨 농민반란이 막 타오른 것이다.
이때는 소빙기의 관점에서도 주목된다. 16세기말 두드러졌던 한랭현상은 17세기에 접어들어 약간 소강상태였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다시 현저해지고 있었다. '무진년'이 특히 그러했다. 음력 2월 하순 아열대인 강남은 폭설과 혹한으로 뽕, 삼, 콩, 밀, 면화, 과수들이 시들어버렸다. 겨울에는 안휘, 강서, 호북, 호남에 강과 호수의 물고기가 얼어 죽었다. 같은 해 조선도 9월 평안도,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에 이른 서리가 내려 곡식이 말라죽었다. 반란이 확산되던 섬서성도 8월 서리가 내려 곡물이 죽고 겨울에는 소와 양이 얼어 죽었다. 정묘년과 무진년은 농민반란의 시작점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가뭄과 한랭현상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농민반란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마무재가 올린 보고의 하이라이트는 '작년'이 아니라 올해, 곧 숭정 2년(1629)이다. 쑥, 나무껍질, 돌덩이마저 먹을 수 없다면 무엇이 남아 있을까? 짐작할 것이다. '사람'이다. 그는 그의 고향에서 식인 행위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굶어 죽는 것이나 도적질하다 죽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앉아서 굶어 죽을 바에야 도적질하다 죽어서 배부른 사귀(死鬼)가 되는 것이 낮지 않겠는가?"라는 말은 농민반란의 불가항력적인 부분을 보여준다.
정묘호란이 발생했던 해에 황제가 되었던 숭정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는 정국을 운영하면서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최후를 앞둔 그가 "여러 신하들이 짐을 그르쳤다"고 한 항변은 소빙기의 관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기후는 다시 널뛰기 시작했고 역사는 요동치고 있었던 것이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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