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제2회 중세온난기, 바이킹 그린란드에 정착하다

블루트레인 2011. 12. 2. 00:16

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2> 중세온난기, 바이킹 그린란드에 정착하다

바이킹의 최초 아메리카 발견, 정착지 냉각에 역사서 잊혀져

 

[국제신문] 2011년 4월 21일

 

 

982년께 붉은 머리 에이리크가 이끄는 한 무리의 바이킹이 아이슬란드 서쪽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그가 아이슬란드로 이주했던 것은 22년 전. 그의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러 고향인 노르웨이에서 추방되었을 때였다. 그러나 그도 역시 폭행사건에 연루돼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됐다. 결국 그는 무리를 이끌고 서쪽에 있다는 미지의 섬을 찾아 떠나야 했다.

긴 모험 끝에 그들은 양을 키울 수 있는 푸른 초원과 우거진 숲을 발견했다. 3년 후 정착할 사람을 모으기 위해 아이슬란드로 돌아갔을 때 에이리크는 그 땅을 '그린란드(Greenland)'라 불렀다. 사람들을 매혹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지만, 실제로 당시 그린란드는 '초록의 땅'이었다. 이들 바이킹은 그린란드 서쪽으로 탐험을 계속하여 현재 북아메리카의 래브라도, 뉴펀들랜드에 도달했고, 일부는 그곳에 정착했다.

1000년 전 바이킹들의 이러한 모험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은 기후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는 중세온난기(Medieval Warm Period)로 대단히 따뜻했던 시기였다. 대체로 900~1300년에 이르는 중세온난기 동안 거대한 빙하들은 줄어들었다. 포도 북방한계선은 현재보다 훨씬 북쪽인 엘베강과 북해연안 포메른까지 확장됐다. 독일 경작지의 고도는 현재 해발 560m가 한계인 것에 비해 당시는 해발 780m 고지에서도 작물이 재배됐다. 220m의 표고차를 계산하면 중세온난기의 기온이 현재보다 섭씨 1~1.4도 정도 높았음을 의미한다.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노르웨이에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로 이어지는 바닷길에서 1년 내내 부빙(浮氷)을 발견할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얼음의 땅'으로 버려졌던 아이슬란드(Iceland)에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온난해진 기후 덕분이었다.

동아시아는 어떠했을까? 중국에서는 600~1000년이 특히 온난했는데, 대체로 수·당시기에 해당하므로 '수당온난기'라 한다. 당시 아열대 식물인 감귤, 대나무, 매화는 수도인 장안 부근에서도 생장이 좋았다. 야생코끼리는 회수와 양자강 북부에도 서식하여, 때론 무리를 이뤄 밭과 가옥들을 파괴하곤 했다. 10세기를 전후하여 단기적으로 한랭했던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온난했다고 평가한다. 종합하면 수당시대 연평균 온도는 현재보다 섭씨 1도 정도 높았고, 당시 아열대 기후의 북방한계선은 현재보다 위도 1도 정도 북쪽이었다.

이제 하나의 그래프를 기억하자. 2001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제3차 보고서에서 지난 1000년 동안 지구의 기후변동을 나타낸 것이다. '하키스틱'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그래프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명백하다. 지난 1000년 동안의 기후변동은 미미했으며, 오로지 현재만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온이 급상승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유럽의 포도재배지역은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중세온난기의 그것만큼은 아니다. 중국에서도 감귤 대나무 매화의 북방한계선은 수당온난기의 그것에 이르지 않았다.

 

 

 

2001년 IPCC 제3차 보고서 지난 1000년 동안 북반구 기후변동. (1961~1990년 평균기온과의 차이. 붉은선=온도계, 푸른선=나이테, 빙핵, 역사 기록 데이터)

 


14세기 이후 기후가 한랭해지자 에이리크의 후예들은 그린란드에서 정착지를 잃고 사라져갔다. 소빙하기(Little Ice Age)가 시작된 것이다. 바다를 메워오는 부빙은 그들을 고립시켰다. 콜럼버스보다 훨씬 전에 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사실도 잊혀졌다. '초록의 땅'에 묻힌 그들의 묘지는 빙하에 덮여갔고,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구동토층에 남아 있다. 중세온난기는 지금보다 훨씬 따뜻했던 것이다. 에이리크는 오늘날 지구온난화가 "지난 2000년 동안 겪어 보지 못한 온난화 현상"이라는 IPCC 제3차 보고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