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제요]
역사연구에서 소빙기(Little Ice Age)의 중요성은 지구적인 “동시성”에 있다. 지금까지 중국과 한국의 소빙기를 비교하는 연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아시아 3국의 소빙기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에도 구체적인 시기구분에 대한 인식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구적인 “동시성”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소빙기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지난 600년 동안 북반구의 여름 한랭화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동아시아 기후변동의 지구적인 ‘동시성’을 확인시켜준다. 현저하게 한랭했던 시기들에는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이상저온현상, 흉작, 기근, 폭동, 반란 등이 목격된다. 여름의 한랭한 기후는 17세기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대기근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동시성은 17세기 동아시아 소빙기가 지구적인 기후변동의 일부분이었음을 보여준다.
17세기의 소빙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혹한의 겨울이다. 영국의 템스(Thames)강처럼 중국 아열대의 강과 호수들도 자주 얼어붙었고, 조선에서는 ‘동해’가 결빙하기도 했다. 이러한 겨울의 혹한은 조운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중국과 조선의 국가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또한 겨울의 혹한은 여진족의 침략과 명말 농민반란의 확대 등 17세기 동아시아의 군사방어와 전쟁에도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맺음말]
역사연구에서 소빙기의 중요성은 지구적인 “동시성”에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러한 지구적인 동시성이 어떻게 나타났을까? 이 글에서는 17세기 중국과 조선의 소빙기 기후현상에 대한 비교를 통해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중국의 소빙기 연구성과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과 한국의 소빙기를 비교하는 연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지구적인 동시성의 관점에서 중국과 한국의 소빙기를 본격적으로 비교한 첫 번째 작업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 3국의 소빙기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전되었음에도 구체적인 시기구분에 대한 인식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소빙기의 시작은 물론이고 17세기의 기후에 대해서도 연구자들 사이에 적지 않은 이견이 존재한다. 동아시아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기후현상의 지역적인 차이는 당연하다. 그럼에도 일정한 ‘동시성’은 확인되어야할 것이다. 예컨대 한국연구자의 경우 단일한 공간을 대상으로 하고, 동일한 사료를 활용함에도 너무나 다른 결과를 내놓고 있다. 이것은 결국 분석대상, 기준, 방법 등에서 일정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보다 엄밀한 방법론에 입각하여 동아시아 혹은 지구적인 기후변동과의 관련성 속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지난 600년 동안 북반구의 여름 한랭화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동아시아 기후변동의 지구적인 ‘동시성’을 확인시켜준다. 현저하게 한랭했던 시기들에는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이상저온현상, 흉작, 기근, 폭동, 반란 등이 목격된다. 이러한 동시성을 확인하면 소빙기의 시기구분에 대한 한국, 중국, 일본의 기존 연구들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구사적인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소빙기 기후를 검증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름의 이상저온현상은 17세기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대기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1640년대 명말인 崇禎 12~14년의 대기근, 일본의 寬永大飢饉, 1670년대 현종대의 경신대기근, 일본의 延寶大飢饉, 1690년대 숙종대의 을병대기근, 일본의 元祿大飢饉은 거의 동일한 시기에 발생했다. 이들 기근들은 지구적으로 현저하게 한랭했던 시기에 발생했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동시성은 17세기 동아시아 소빙기가 지구적인 기후변동의 일부분이었음을 보여준다.
17세기의 소빙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혹한의 겨울이다. 영국의 템스 강처럼 중국 아열대의 강과 호수들도 자주 얼어붙었다. 유럽의 지중해가 결빙되었던 것처럼 조선의 동해도 몇 차례 얼어붙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영국에서는 템스 강이 결빙되었을 때 “빙상시장”이 열려 소빙기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중국의 아열대지역인 강남에서 얼음을 깨고서라도 배를 운행하려는 ‘打氷’의 풍경은 17세기의 혹독한 겨울을 잘 보여준다. 여름의 이상저온과 마찬가지로 겨울의 혹한도 17세기 중국과 조선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겨울의 혹한으로 밀과 보리는 물론이고 감귤, 여지 등 아열대과수도 자주 동해를 입었다. 날짐승, 들짐승, 강과 호수의 물고기 그리고 사람마저 얼어 죽을 정도의 혹한은 17세기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복과 연료의 확보는 생존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였다.
보다 중요한 것은 겨울의 혹한이 국가경제, 군사방어에 미친 영향이다. 중국과 조선은 조운을 통해 곡물을 수도로 운송했는데 강과 운하의 이른 결빙은 수로교통을 마비시켜 정상적인 조운체제를 위협했다. 국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논의를 진행해야했다. 흥미로운 것은 겨울의 혹한은 17세기 동아시아의 군사방어와 전쟁에도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후금과 대치하고 있던 조선에서 압록강의 결빙은 군사적인 침략의 前兆였다. 조선의 군사방어도 압록강의 결빙에 맞추어져 있다. 실제로 종묘호란과 병자호란이 한겨울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명말 후금이 중국 내지 ‘깊숙이’ 침략했을 때는 하나같이 한겨울이었다. 1633-34년의 황하결빙이 농민반란군이 사방으로 확대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이처럼 소빙기는 농업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와 군사방어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에서 동아시아 소빙기에 대한 연구가 가지는 중요성이다. 소빙기 연구에서 조선의 기록문화는 매우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동아시아 전체의 기후변동을 이해하는데 한국의 소빙기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소빙기를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했던 애트웰(William S. Atwell)의 연구에서 ‘조선’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의 관심이 1640년대 초반에 그치고 17세기 후반인 1670년대와 1690년대의 대기근의 지구적 동시성에 주목하지 못한 것은 조선의 중요성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17세기 위기”에 대한 그의 인식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동아시아 3국의 소빙기 기후변동은 각각 어떠한 차이가 있었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적인 동시성의 관점에서 한국의 소빙기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동아시아 3국의 자료를 비교검토하고 해독하는데 한국 연구자들은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 통해서 동아시아 소빙기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다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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