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제30회 그해 겨울, 하멜과 백두산 분화

블루트레인 2011. 12. 10. 12:04

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30> 그해 겨울, 하멜과 백두산 분화
봄의 붉은 눈·초겨울 화산재 등 이상기후로 매서운 겨울

 

[국제신문] 2011년 12월 1일

 

 

백두산 천지. 939년께의 대폭발 이후 1000여년 만인 오늘날 다시 대폭발이 임박했다는 예측이 무성하다.

 

1653년 8월 제주에 표착했던 하멜 일행이 서울에 들어온 것은 이듬해 6월이었다. 그해 겨울, 하멜은 조선의 매서운 추위를 경험했다. "11월 말이 되니 날씨가 매우 추워져서 도성 밖 3㎞쯤 떨어진 곳에 있는 강이 두껍게 얼어붙어 이삼백 마리 정도의 짐을 가득 실은 말들이 줄을 지어 건너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 강이 무엇인지는 쉬이 짐작하리라. 하멜은 한강이 꽁꽁 얼어붙어 짐을 가득 실은 수백 마리 말들이 그 위를 지나다니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이다. 효종 5년(1654), 그해 겨울은 왜 그렇게 혹독했을까?

1650년대 여름에 눈과 서리가 내리는 등의 각종 기상이변은 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1654년의 날씨는 분명히 특이했다. 그해 봄 강원도에 붉은 눈이 내리고, 여름 경상도에는 붉은 비가 내렸다. 이변이 심했던 곳은 함경도였다. 붉은 눈과 바닷물이 붉게 변한 재변은 이전에 없었던 일로 함경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모두 전했던 말이다. 붉은 눈과 비, 이것은 화산분화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9월에는 압록강 강물이 끓는 물처럼 뜨거워 물고기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11월의 기록은 더욱 분명하다. "검은 기운은 비 같은데도 비가 아니며, 연기 같은데도 연기가 아닙니다. 북쪽에서 밀려왔는데 소리는 바람이 몰아치는 듯하고 냄새는 비릿하면서 노릿했습니다. 잠깐 사이에 산골짜기에 가득 차서 햇빛을 가려 지척에 있는 소와 말도 분별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괴이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겨울철 북동풍을 타고 경기도까지 밀려온 비릿하고 탁한 매연은 백두산이 분화하면서 분출된 화산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멜은 백두산이 분화하던 해에 서울에 와서 그해의 매서운 겨울을 겪었던 것이다.

혹한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듬해인 1655년 1월 함경도에는 큰 눈이 내려 백성들이 깔려 죽고 얼어 죽었다. 봄에는 동해가 얼어붙어 효종과 신료들을 놀라게 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6월 제주에 큰 눈이 내려 국마(國馬) 900여 필이 동사했다. 한여름, 그것도 제주에서 말이 얼어 죽는 기록적인 한파였다. 시선을 돌리면 그해 겨울의 강추위는 조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중국은 아열대의 강과 호수들이 결빙하고 감귤이 동사했다. 더욱 놀랍게도 절강의 앞바다마저 결빙됐다. 백두산에 가까운 요녕은 큰 눈이 3m나 내려 꿩과 토끼가 사람 사는 집으로 들어왔다. 이때 영국의 템스 강도 결빙하여 선박들이 운행을 하지 못했다. 하멜은 지구적인 혹한의 일부분을 조선에서 봤던 것이다.

그해 백두산 혹은 부근의 화산분화가 지구적인 기후변동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렇지만 한반도 기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조선시대 백두산은 1403년, 1668년, 1673년, 1702년, 1903년에 분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산분화 이후에는 극심한 기상이변이 있었고, 흉작과 기근으로 연결되었다.

 

백두산이 1000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날 것이라는 경고가 계속 전해지고 있다. 939년께 있었던 대폭발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백두산이 폭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분명한 것은, 남한보다는 북한의 피해가 치명적일 것이다. 1000년 전처럼 동북아시아 국제질서가 변할 수도 있다. 백두산 대폭발로 발해가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영원히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잊지는 않았으리라. 그때 고려는 발해를 위해 어떤 협력을 했던가? 그 광활한 발해의 영토는 어디로 사라졌던가?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