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mate & History/[동아시아 소빙기 연구실](2001-09)

[2007] 17세기 강남의 소빙기 기후

블루트레인 2014. 11. 22. 01:39





[논문초록]


본고는 17세기 江南을 중심으로 小氷期 기후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았다. 기존의 연구들이 중국 전체 혹은 華中이라는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분석 결과를 江南에 적용하고 있는데 반해, 본고에서는 17세기 江南의 기후자료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을 통해서 이것이 중국 혹은 세계사적인 기후변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밝히고자 했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17세기 동안 氣候寒冷化가 현저했다는 점이다. 당시의 기후한랭화 현상은 여러 측면에서 증명된다. 太湖黃浦는 이전에 비해 자주 결빙했고, 舟楫不通酷寒頻發했다. 冬季酷寒으로 柑橘을 비롯한 果樹禽獸, 때론 사람마저 凍死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여름에 눈이 내리는 夏雪등의 이상저온현상이 현저하여 작물의 생장에 피해를 주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현상들은 지난 수천 년 사이에 17세기가 가장 한랭했던 시기였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둘째, 대체로 1570년대 말부터 1700년까지 한랭화 현상이 현저했다. 1551년에서 1750년까지 200년 동안의 기후변동을 살펴보면, 1550년대 이후의 온난한 기후는 1570년대 말부터 한랭한 기후로 전환되어 대체로 1700년까지 지속되었다. 1700년대 이후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난기후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竺可楨의 연구에서 언급된 2차 한랭기1570년대 말에 시작되어 1700년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기간에도 기후는 일정치 않았다. 예컨대 1600년대와 1610년대는 전체적인 한랭기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온난한 시기로 파악할 수 있지만, 오늘날에 비하면 훨씬 한랭한 기후였다.

셋째, 17세기 小氷期 기후의 시작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중국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제2寒冷期의 시작을 1600년 혹은 1620년을 잡고 있다. 이것은 유럽과 20년에서 50년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록들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江南도 유럽과 동일한 시기인 1570년대 말에 한랭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제2차 한랭기의 시작에 대한 기존의 입장은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넷째, 江南氣候變動은 유럽의 그것과 매우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예컨대 유럽과 중국에서 포도농원과 감귤농원이 확대되었다가 축소되는 과정은 거시적으로 동일한 궤적을 보이고 있다. 특히 1676-77, 1684-84년의 겨울의 경우, 江南의 기후가 세계적인 기후현상과 동시성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화산폭발과 세계적 기후변동에 대한 기후학의 연구성과는 강남의 기후변동이 단순히 지역적인 범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중국 및 세계적인 소빙기 현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7세기 전반보다 후반이 더욱 한랭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太湖黃浦의 결빙 기록은 17세기 후반에 집중되어 있다. 1660년대와 1670년대는 여름에 눈이 내렸다는 기록이 각각 8년과 5년이 확인될 정도로 17세기 후반은 이상저온 현상도 극심했다. 이런 사실은 明淸交替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즉 지금까지 小氷期에 대한 연구가 주로 明朝의 멸망의 밝히는데 집중되어 왔다. 반면에, 기후조건이 더욱 열악했던 17세기 후반에 淸朝가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따라서 앞으로 연구에서 17세기 후반의 소빙기 기후와 淸朝의 대응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맺음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17세기의 세계적인 위기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오직 기후변화뿐이라고 지적했다. “17세기 위기론을 해명하기 위해 제기된 小氷期(Little Ice Age)”는 역사연구에서 기후의 중요성과 더불어 세계사적인 관점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중국사연구에서도 小氷期는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明淸交替를 설명하는 유용한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접근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小氷期의 구체적인 모습이 연구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17세기 江南을 중심으로 중국에서 小氷期 기후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았다. 기존의 연구들이 중국 전체 혹은 華中이라는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분석 결과를 江南에 적용한데 반해, 본고에서는 17세기 江南의 기후자료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을 통해서 이것이 중국 혹은 세계사적인 기후변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밝히고자 했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17세기 동안 기후의 한랭화가 현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미 기후학자들에 의해 충분히 밝혀진 사실이다. 실제로 당시의 기후한랭화 현상은 여러 측면에서 증명된다. 太湖黃浦는 이전에 비해 훨씬 자주 결빙했고, 선박의 운행이 불가능한 해가 많았다. 눈이 수십일 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일이 잦았으며 적설량도 많았다. 겨울의 혹한으로 柑橘을 비롯한 과수와 짐승, 때론 사람이 동사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여름에는 여름에 눈이 내리는 등 이상저온현상이 현저하여 작물의 생장에 피해를 주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현상들은 지난 수천 년 사이에 17세기가 가장 한랭했던 시기였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다음으로 전체적인 한랭한 기후 속에서도 각 시기별로 그 변동 폭은 컸다. 1551년에서 1750년 사이의 200년 동안 기후변동을 살펴보면, 1550년대 이후 지속되었던 온난한 기후는 1570년대 말부터 한랭한 기후로 전환되어 대체로 1700년까지 지속되었다. 1700년대 이후는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난기후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竺可楨 의 연구에서 언급된 2차 한랭기1570년대 말에 시작되어 1700년까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기간에도 기후는 일정치 않았다. 예컨대 1600년대와 1610년대는 전체적인 한랭기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온난한 시기였지만, 오늘날에 비하면 훨씬 한랭한 기후였다.

강남에서 제2차 한랭기가 1570년대 말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중국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제2차 한랭기의 시작을 1600년 혹은 1620년을 잡고 있다. 이것은 유럽과 짧게는 20년에서 50년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후 기록들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江南도 유럽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한랭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다른 지역의 方志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제2차 한랭기의 시작에 대한 기존의 입장은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강남의 기후변동은 유럽의 그것과 매우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예컨대 유럽과 중국에서 포도농원과 감귤농원의 확대와 축소과정은 거시적으로 동일한 궤도를 걸어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676-77, 1684-84년의 겨울의 경우, 강남의 기후가 세계적인 기후현상과 동시성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화산폭발과 세계적 기후변동에 대한 기후학의 연구성과는 강남의 기후변동이 단순히 지역적인 범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중국 및 세계적인 소빙기 현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17세기 전반보다 후반이 더욱 한랭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太湖黃浦의 결빙 기록은 17세기 후반에 집중되어 있다. 1660년대와 1670년대는 여름에 눈이 내렸다는 기록이 각각 8년과 5년이 확인될 정도로 17세기 후반은 이상저온 현상도 극심했다. 이런 사실은 明淸交替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즉 지금까지 小氷期에 대한 연구가 주로 明朝의 멸망의 밝히는데 집중되어 왔다. 반면에, 기후조건이 더욱 열악했던 17세기 후반에 淸朝가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淸朝17세기 후반의 위기를 딛고 18세기에 康乾盛世를 이루었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연구에서 17세기 후반의 소빙기 기후와 淸朝의 대응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