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한담: 상상과 열정/Black Coffee & Green Tea

하멜과 청어, 북극항로를 찾아라!

블루트레인 2015. 9. 7. 13:40
하멜과 청어, 북극항로를 찾아라!

 

SEA & (2015년 8월호)

http://www.webzinesean.kr/html/main/view.php?idx=128&keyword=&keyfield=&s_category

 

 

KAMI(한국해양산업협회)의 잡지 "SEA &" 2015년 8월호에 글을 실린 글이다. 하멜의 보고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이 바로 청어를 언급한 부분이었다. 원래 이 글은 다음에 청어에 대한 책을 쓸 때 긴요하게 쓸 요량으로 아껴두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생각을 조금 비춰보았다. 잡지에는 그림이 한정되어 있어 풍부하게 싣지 못했기에, 여기에서는 '맘껏' 실어본다.

 

 

그것은 짙은 그리움이었다. 안개처럼 스멀스멀 코끝으로 스며들어 끝내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낯선 땅에서 맛본 낯익은 비린내! 거대한 폭풍우에 휩쓸려 13년 동안(1653~1666) 이역의 땅에 머물러야 했던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파도 일렁이는 전라도 바닷가에서 그는 아늑한 고향의 냄새를 맡았다. 조선을 탈출한 그가 동인도회사(VOC)에 올린 보고서에는 그 짙은 그리움의 정체가 담겨 있다. 

 

동북쪽으로는 넓은 바다가 있다. 그곳에서 매년 네덜란드나 다른 나라의 작살이 꽂혀 있는 고래가 꽤 발견된다. 12, 1, 2, 3월에는 청어가 많이 잡힌다. 12월과 1월에 잡히는 청어는 우리가 북해(North Sea)에서 잡는 것과 같은 종류이며, 2월과 3월에 잡히는 청어는 네덜란드의 튀김용 청어처럼 크기가 작은 종류이다.

(출처 : 하멜표류기)

 

고래(Whale)와 청어(Herring). 돌이켜보면, 하멜이 조선에서 보았던 물고기는 이것들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하필 이 둘만을 언급했을까? 다른 까닭이 아니었다. 고래잡이와 청어어업은 네덜란드의 대표 산업으로, 궁벽한 이 저지대 국가를 유럽 최강의 부국으로 만들어주었다. 이 두 물고기는 하멜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고향의 기억,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하멜이 고래와 청어를 언급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위의 문장에 바로 이어진 따라서 바이가트(Waeijgat: 시베리아 북안에 있는 작은 섬) 해협에서 코레아와 일본으로 통하는 수로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라는 말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바로 북극항로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이후, 유럽인들은 그들 항해의 최종 목적지인 중국으로 통하는 최단의 항로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스칸디나비아를 돌아서, 시베리아 해안을 따라가면 중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 북극항로를 개척하는 데에 선두에 섰던 탐험가가 네덜란드 출신의 빌렘 바렌츠(Willem Barents)였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6, 이미 두 차례의 항해를 통해 노바야젬랴 군도 부근까지 탐험했었던 바렌츠는, 이번 항해에서는 노바야젬랴 북쪽 해안을 돌아가기 위해 항해를 계속했다. 하지만 때 이른 혹한이 밀어닥치자, 배들은 거대한 얼음바다에 갇혀버렸다. 이듬해 봄까지 끔찍한 동장군을 겨우 견뎌냈던 그는 돌아오던 길에 끝내 죽음을 맞이했고, 북극항로를 찾으려던 그의 꿈도 꺾였다.

 

 

 

 

 

바렌츠의 탐험은 실패했지만, 그의 항해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왔다. 세 번째 항해에서 바렌츠는 스피츠베르겐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수천 마리의 해수(海獸) 떼를 보았다. 바로 고래였다. 바렌츠는 고래사냥의 보고(寶庫)를 발견했던 것이다. 네덜란드인들은 스피츠베르겐 섬에 세계 최초로 포경산업 기지를 세웠고, 이후 150년 동안 이곳은 세계 포경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하멜이 조선 바다에서 보았던 네덜란드 작살이 꽂힌 고래는 스피츠베르겐에서, 바렌츠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북극항로를 통해 넘어온 고래였던 것이다. 고래는 성공했지만, 바렌츠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오늘날보다 훨씬 한랭했던 소빙기(Little Ice Age)’였기 때문이다.

 

 

 

 

작은 빙하기를 의미하는 소빙기는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지구를 지배했다. 이 기간 동안에 연평균 기온은 오늘날에 비해 1.5~2정도 낮았다. 한랭해진 날씨로 빙하는 확장하고, 아열대의 강과 호수마저 얼어붙었고, 심할 경우에는 발트해를 비롯한 바다마저 결빙했다. 바렌츠와 하멜이 살았던 16세기와 17세기가 그 절정의 시기였다. 전라도 강진에서 하멜은 폭설이 내려 사람들이 굴을 파고서 통행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가 조선에 머무는 동안 한여름에도 눈과 서리가 내렸으며, 강원거 앞 바다는 두 번이나 얼어붙었다. 이런 소빙기에 북극항로를 찾으려는 바렌츠의 모험은, 그가 결코 알 수 없었겠지만, 무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소빙기는 네덜란드에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바다수온이 내려가자 노르웨이해와 발트해에 서식하던 한 물고기가 대거 북해로 남하했던 것이다. 이 물고기의 저장법을 개발한 네덜란드는 자신들의 앞 바다에 대거 몰려든 뜻밖의 행운을 잡아 유럽 전역에 판매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이 물고기가 바로 청어였다. 청어는 최초로 자본주의시스템을 만들어낸 17세기의 네덜란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암스테르담은 청어의 뼈 위에 건립되었다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말고 청어가 가장 많이 났던 곳은 어디였을까? 놀랍게도 그곳은 조선이었다. 소빙기가 시작되던 14세기부터 조선의 바다는 청어로 넘쳐났다. 일찍이 이규경은 청어는 동서남북을 막론하고, 사시사철 항상 나는 것이라고 했다. 청어가 동해, 서해, 남해, 북해(함경도 바다)의 전 바다에서 날뿐만 아니라, 늦가을 함경도를 시작으로 초여름에 황해도에 이르기까지 사계절에 모두 잡힌다는 것이다. 성호 이익은 청어가 바다를 메워 몰려오니 사방 수백 리 사이에서 청어를 먹지 않는 이가 없다고 했다. 성해응은 청어라는 것이 무리를 이루어 바다를 덮어 오는데, 사람이 능히 배를 버리고 그 위에 설 수 있다라고까지 했다. 흥미롭게도 소빙기의 한랭화가 극심했던 17세기를 즈음해서는, 강한 리만한류를 타고 한반도 해역을 거쳐서 중국의 바다까지 청어가 몰려들었다. 에도시대 일본에서는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청어어업이 본격화되면서 상품경제의 발전을 추동했다. 청어는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국가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소빙기의 한랭화는 농업생산에 위기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청어와 같은 한류성어종들이 몰려들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하멜의 고국인 네덜란드는 청어를 통해 위기기회로 만드는 데 성공했던 대표적인 나라였다. 하멜은 조선의 바다에서 바로 그 청어를 보았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 낯익은 비린내에서 느꼈을 감회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하멜은 조선의 바다에서 나는 청어가 네덜란드의 앞바다인 북해에서 나는 그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또한 작살이 꽂힌 고래를 보면서, 네덜란드의 바다와 조선의 바다가 북극항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바렌츠 이후에 북극항로를 찾으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가 어떠했을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으리다.

 

 

 

21세기 오늘날 바렌츠와 하멜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다. 바렌츠의 꿈을 가능하게 한 것은 지구적인 기후변화, 곧 온난화(Warming)이다. 17세기처럼 로테르담에서 시작되는 북극항로의 최종 종착지는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은 더 이상 그때의 중국이 아니다. 명청시대에 바다를 외면하고 경시했던 중국은 처절한 문명의 반성을 통해 바다를 다시 보았다. 그들이 말하는 G2시대의 대국굴기, 결국 해양강국이다. 이러한 문명의 전환기에 우리는 서 있다. 하멜이 표착했을 때 격랑 치는 바다세계에 침묵했던 그때처럼, 오늘날 우리나라는 바다를 통해 문명의 전환을 이루어내려는 어떤 전망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격랑 치는 21세기의 바다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을 뿐이다.

 

 고국으로 돌아갔던 하멜에게 전라도 바닷가에서 맛본 청어는 다시 짙은 그리움이 되었을 것이다. 북극항로가 열리던 날, 하멜이 조선의 바다로 돌아온다면, 그는 청어를 맛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리웠던 그 비린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