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문화사/지구변동의 역사

[중앙일보] 마야문명, 가뭄 감당 못해 붕괴 … 『분노의 포도』엔 거대 모래폭풍

블루트레인 2015. 9. 7. 10:37

마야문명, 가뭄 감당 못해 붕괴 … 『분노의 포도』엔 거대 모래폭풍

 

 

중앙일보 2015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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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모래폭풍이 미국 텍사스주의 한 마을을 덮치고 있다. 당시 오랜 가뭄을 겪은 미 중서부 지역이 진원지였다. 이 모래폭풍은 『분노의 포도』와 ‘인터스텔라’에 영감을 줬다. [사진 위키피디아]

 

 

‘그레이트 블루홀(Great Blue Hole)’. 중앙아메리카의 소국인 벨리즈의 앞바다에 있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구멍 모양의 환초 지대다. 스킨스쿠버의 성지이자 마야문명의 비밀이 숨겨진 곳이다.

 중앙아메리카 전역에 60여 개 도시를 세울 정도로 번영했던 마야문명은 서기 900년 이후 갑자기 사라졌다. 다양한 이론이 제기됐는데 대가뭄(Megadrought)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 미국의 라이스대학 연구팀은 그레이트 블루홀의 침전물을 분석한 결과 800~1000년 인근 유카탄 반도에서 가뭄이 잇따랐다고 지난 1월 발표했다. 유카탄 반도는 마야문명의 중심지였다. 마야문명은 수리·관개시설을 잘 갖춰놨지만 가뭄은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계속됐다. 결국 기근과 사회·정치 불안 때문에 마야문명이 붕괴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가뭄은 인류의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겨 왔다. 부경대 김문기(사학) 교수는 “농업 위주의 전근대 시대에서 이상기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문명과 국가는 무너졌다”고 말했다. 앙코르와트라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긴 캄보디아의 크메르제국과 미국 나바호 인디언의 아나사지문명도 대가뭄의 희생양이다. 식량난을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떠나면서 큰 도시가 한순간에 유령도시로 변했다.

 『날씨가 바꾼 익사이팅 세계사』를 쓴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수퍼 엘니뇨가 발생하면 가뭄이 여러 해 지속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적 기근을 불러온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19세기 후반의 대기근 얘기다. 1876~79년, 1889~91년, 1899~1902년에 인도·중국·브라질·에티오피아·베트남·필리핀 등이 가뭄을 겪었다. 수퍼 엘니뇨 때문에 인도의 경우 비를 불러오는 계절풍이 끊겼다. 동남아시아에선 강한 고기압이 형성돼 비구름이 약해졌다. 반 센터장은 “그 영향이 중국과 한국에도 미쳤다”고 말했다. 세 차례의 대가뭄으로 인도에서만 1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① 마야문명 ② 크메르제국 ③ 아나사지문명. 이 세 문명은 대가뭄(Megadrought) 때문에 멸망한 것으로 설명된다. 가뭄이 지속돼 식량난으로 이어지고,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도시를 떠난 게 원인이었다. [중앙포토]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종은 1876년 “가뭄 때문에 흉년이 든 경기와 경상·전라·충청도에 내탕금 각각 1만 냥을 내려보내고, 피해가 심한 지역의 세금을 내려라”고 지시했다. 1888~89년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왔다. 고종은 1889년 기우제를 지내라고 명을 내렸다. 그런데도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으로의 곡물 수출은 줄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은 1889년 9월 방곡령(防穀令)으로 콩 수출을 금지했다. 일본은 피해를 보았다며 배상금을 요구했고, 굴복한 조선은 11만 환을 냈다. 조선의 경제가 일본에 예속하게 된 계기였다. 이후 민란은 끊이지 않았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1640~41년 중국 역사상 최악의 가뭄은 병충해와 전염병까지 겹쳐 대기근을 낳았다. ‘먹을 게 없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였다. 전체 인구의 50%를 잃은 지역도 있다. 1641년 9월 조선에서도 “경상도에선 낙동강 물이 끊겼다”고 할 정도로 가물었다. 일본에서도 ‘간에이(寬永) 대기근’ 시대로 불린다. 반 센터장은 “당시 소빙기(小氷期)가 절정이었기 때문에 예년보다 기온이 낮았다. 냉해에다 한발까지 더해 작황이 좋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가뭄과 대기근을 맞았지만 명(明)나라에선 저수시설이 망가졌고, 구호식량은 전달되지 못했다. 그 결과가 1644년 명의 멸망이다. 김 교수는 “중국 역사를 보면 재해를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적폐 때문에 놓친 왕조는 망했다. 재해 자체가 아니라 내부 시스템의 붕괴가 멸망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소설·영화 속의 가뭄=“흙먼지는 아침에도 안개처럼 허공에 떠 있었다. 태양은 선혈처럼 붉었다. 종일 흙먼지가 조금씩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고, 다음날에도 계속 떨어져 내렸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한 구절이다. 소설에서 조드 가족은 193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한다. 당시 오클라호마주는 거대한 모래폭풍이 일었던 더스트볼(Dust Bowl) 지역이다. 1930년 8월부터 미주리·일리노이 등 12개 주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이듬해 바싹 마른 땅에서 모래먼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검은 폭풍(Black Blizzard)이라는 모래폭풍은 점점 더 자주 발생했다. 중서부에서 3000㎞ 이상 떨어진 대서양에서 항해 중인 배를 덮치는 일도 있었다. 1935년 4월 14일 ‘암흑의 일요일’엔 높이 1000m의 모래바람이 미국을 강타했다. 1938년에야 진정됐다. 이 무렵 20만 명 이상의 농민이 소설처럼 66번 국도를 타고 캘리포니아주로 향했던 ‘미국판 출애굽기’가 펼쳐졌다. 이와 같이 가뭄은 소설·영화에서 고난과 시련의 배경으로 쓰인다.

 더스트볼은 영화 ‘인터스텔라’에 영감을 줬다. 영화 속 모래폭풍은 1930년대와 비슷하다. 노인들이 지구를 떠나기 전 시절을 회상하는 영화 장면은 대부분 실제 더스트볼 생존자와의 인터뷰라고 한다.

 브라질의 대표작가 하셰우지 케이로스(1910~2003)의 『가뭄』은 브라질판 『분노의 포도』다. 그는 카팅가(흰 숲) 또는 세르탕(오지)이라 불리는 남미 내륙의 노르데세테(동북부) 출신이다. 이곳에선 비가 변덕스럽게 내린다. 케이로스는 다섯 살 때인 1915년 가뭄으로 고향 노르데세테를 떠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4년을 보냈다. 소설은 그처럼 난민이 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묘사했다.

 펄 벅의 『대지』 주인공 왕룽은 어느 해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땅을 팔아야만 했다. 지독한 가뭄이 들어 곡식은 말라 죽고 사람들은 나무순이나 풀뿌리, 심지어 흙으로 연명했다. 버티다 못한 왕룽은 토지를 팔고 남쪽 도시로 떠난다.

 『오즈의 마법사』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지역신문 편집자이자 칼럼니스트였다. 그는 다양한 상징을 통해 현실을 비판했다. 허수아비는 농부를, 양철나무꾼은 노동자를, 겁쟁이 사자는 정치인을 각각 뜻한다. 소설이 쓰인 1890년대 미국의 중서부 농부들은 가뭄 때문에 은행에 땅을 헐값에 넘겨야만 했다. 그래서 주인공 도로시가 양동이의 물을 끼얹어 서쪽 마녀(자본가)를 사라지게 만드는 모습은 작가가 비가 내려 가뭄이 해갈돼 농부들이 생기를 되찾기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한다.

 영화 ‘매드맥스’와 ‘일라이’는 폐허와 가뭄의 세상 속에서 물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