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명청시기 강남의 기후변동과 동정감귤
[맺음말]
본고에서는 동정산의 개발이 어떠한 조건들 속에서 이루어지고, 또 변형되고 있는가 하는 점과 그 과정에서 기후는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하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명청시기 강남에서 기후변동의 구체상에 대해서 접근해보고자 하였다.
동정산의 ‘孤峰絶島’ 혹은 ‘山多田少’라는 지리적․지형적 특성은 농업적 조건으로 결코 유리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변의 발달된 도시와 시장, 이를 연결할 수 있는 편리한 수로 교통은 주변의 도시와 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경제작물의 재배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동정산은 산지를 중심으로 과수나 차와 같은 작물을 재배하여 상품화함으로써 불리한 농업적 조건을 극복하였다. 동정산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塢’라는 지명은 동정산의 개발이 산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준다. 동정산에서 산지에 대한 개발은 당송 이래로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명 초까지 원숭이가 서식할 정도의 풍부한 산림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산지 깊숙한 곳까지 개발이 진행되면서 차츰 깊은 숲은 사라져갔고, 이를 대신해 다양한 과수가 기존의 식생을 대체하였다.
당송 이래로 동정산의 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감귤재배였다. 당시 동정산의 대부분 사람들은 감귤재배를 주된 業으로 삼고, 더 나아가 專業化하고 있었다. 동정산은 감귤재배의 북한계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으면서, 발달한 운하 교통을 통하여 우수한 품질의 감귤을 전국적인 시장으로 유통시킴으로써 감귤생산의 명산지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당시의 명성은 동정감귤에 대한 ‘天下第一’, ‘絶品’, ‘名天下’와 같은 평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동정산의 감귤재배는 15세기 중반 이후로 중대한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 원인은 기후의 변동에서 찾을 수 있다.
명청시기 강남의 지방지와 문집 등을 살펴보면, 대설, 호수나 하천의 결빙, 여름철의 이상저온 현상, 동식물의 동사에 대한 기록들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고 그 정도도 심하여, 이 시기의 기후가 이전에 비해 훨씬 한랭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명청시기 강남의 기후는 여러 차례의 진폭이 있었지만, 대체로 15세기 중반 이후 한랭해지기 시작하여, 16세기에는 더욱 한랭해지고, 17세기에는 극히 심하였다. 이후 18세기에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가 19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다시 한랭해지고 있다. 이러한 기후적 조건의 변화는 동정산의 주된 경제작물이었던 감귤재배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동정감귤은 기후 한랭화가 시작되는 15세기 중엽 이래로 계속적인 凍害를 입어 재배가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송이래 감귤의 주요 생산지였던 강남은 오히려 수요지로 전락하였고, 이를 대신해서 위도 상 훨씬 아래에 위치한 江西나 衢州의 감귤이 강남에 널리 유통되었다. 이와 함께 ‘천하제일’, ‘절품’, ‘명천하’로 일컬어지던 동정감귤의 역사적 명성과 지위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 시기 작물재배의 북한계가 南下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감귤의 경우 17세기를 전후하여 동정산 주변 지역은 물론이고 그 이남의 항주의 唐棲, 王洲 및 소흥부 會稽에서도 감귤재배의 쇠퇴가 보이고 있는데, 당시 그 북한계는 대체로 위도 상 훨씬 아래인 29°정도까지 후퇴하고 있다. 차의 경우 17세기를 전후하여 전통적인 차 명산지였던 동정산과 그 인근 지역의 차 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지고, 이를 대신해 위도 상 훨씬 아래에 있는 天目山지역이 새로운 차 생산의 명산지로 각광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茶 생산의 북한계도 점차로 남하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木蘭의 경우도 송대에는 吳縣의 주된 식생의 하나였는데 17세기를 전후하여 사라져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후 한랭화로 동정산의 식생에서 추위에 약한 아열대작물의 점차로 쇠락해 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작물재배의 북한계가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당시 기후 한랭화가 일시적이거나 局地的인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현상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이와 같이 명청시기의 기후 한랭화는 동정산 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왔던 감귤재배의 쇠퇴를 불러왔다. 이에 따라 동정산의 농업경제도 중대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변화에 있어 먼저 주목되는 것은 과수재배가 다원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감귤재배가 쇠퇴하자 복숭아, 매화, 대추, 밤과 같은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다른 다양한 과수가 감귤을 대체해 갔다. 이에 따라 감귤이 중심이 되었던 이전의 과수재배가 다양한 과수들로 다원화되고 있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명말청초에 이르면 뽕잎의 상품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동정산은 일찍부터 양잠업이 발달하여 뽕나무의 재배가 성행하여, 감귤이 凍害를 입었을 때 감귤의 대체작물로 재배되기도 하였다. 명말청초에 이르면 이에 더 나아가 전문적인 판매를 위한 뽕의 재배가 확대되어 주변의 양잠업이 발달한 市鎭으로 왕성하게 공급되고 있었다. 동정산 농업경제의 변화에 있어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명말청초에 이르면 상품성 화훼작물의 재배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화훼작물의 경우 뽕나무의 재배와 경쟁하는 측면도 지니고 있었는데, 청대에는 부근의 光福山과 더불어 대표적인 화훼생산지로 발전하였다. 이 외에도 꼴(茭)을 비롯한 다양한 작물이 상품성 작물로 재배되고 판매되었다. 동정산 농업경제의 이러한 변화는 당시 강남에서 상품경제와 도시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뽕잎이나 꽃, 꼴과 같은 작물이 새로운 상품성 작물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동정산에서 감귤재배가 쇠퇴해 가는 과정은 명청시기 강남의 기후가 이전보다 한랭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기왕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좀더 심도 있는 고찰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중국전체 혹은 華中이라고 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기존의 연구성과를 강남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강남의 구체적인 기후변동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강남의 각종 지방지와 문집, 일기류를 분석했을 때 기존 연구에서의 명청시기 溫暖冬季의 시기구분을 강남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지적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당시 강남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기록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기후변동을 좀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후변동이 강남의 농업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있지만, 그것이 농가의 농업경영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하는 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로 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