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mate & History/[동아시아 소빙기 연구실](2013-14)

[2014] 동아시아 해양어류지식의 역사: 어보 출현 이전을 중심으로

블루트레인 2014. 11. 21. 22:42

 

 

 

[국문초록]

 

이 글은 동아시아 魚譜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한 전제로써, 海洋魚類知識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韓國日本의 어류지식은 中國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 글에서는 어류지식의 전통을 크게 다섯 갈래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詩經의 감성적인 交感, 山海經의 괴이함의 탐구, 地理書의 체험적 지석, 類書類의 종합적 지식, 本草書의 실용적인 효용이 그것이다.

 

중국의 魚類知識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것은 本草書였다. 특히 本草綱目海洋魚類知識은 조선과 일본의 博物學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의 海洋魚類에 대한 博物學적인 접근은 주로 類書類에서 찾을 수 있다. 17세기와 18세기에도 博物學的인 접근이 있었지만, 19세기에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일본 해양어류지식의 발전에 결정적인 작용을 했던 것은 本草書였다. 17세기 초반 本草綱目이 전래되면서, 博物學이 크게 발전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17세기를 전후한 시기는 동아시아 해양어류지식의 발전과정에서 하나의 轉機였다. 藥物本草本草綱目臨床醫學東醫寶鑑本草學의 정점이었다. 일본은 本草綱目東醫寶鑑의 영향을 받으면서 本草學博物學의 단계로 발전시켰다. 18세기에 이르면, 그 수량과 질적인 면에서 일본의 해양어류지식은 중국과 조선을 압도했다. 이런 사실은 魚譜의 역사에서 그대로 증명된다.

 

海洋魚類博物學은 단순히 물고기에 대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바다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동아시아 知性史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앞으로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맺음말]

 

이 글은 동아시아 어보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한 전제로써, 해양어류지식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해양어류지식의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비교사적인 관점이 중요하다. 각국의 어류지식은 동아시아 지성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한자문화권으로서, 한국과 일본의 어류지식은 중국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 글에서는 어류지식의 전통을 크게 다섯 갈래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시경의 감성적인 교감, 산해경의 괴이함의 탐구, 지리서의 체험적 지석, 類書類의 종합적 지식, 본초서의 실용적인 효용이 그것이다.

 

시경의 多識은 동아시아 동식물지식의 형성에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다만 시경과 이아에서 해양어류에 대한 기록은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類書類의 경우, 명말의 三才圖會 및 청대의 續通志古今圖書集成을 살펴보면, 이전에 비해 해양어류지식이 크게 늘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방지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청대의 방지에는 해양어류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중국의 어류지식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것은 本草書였다. 神農本草經으로부터 시작된 본초학의 전통은 명말 本草綱目에서 집대성되었다. 본초강목의 해양어류지식은 조선과 일본의 박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에서 해양어류지식은 15세기에 가서야 나타났다.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지리서에서 지방의 土産으로 바닷물고기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다만 産地魚名만이 표기되어, 어류에 대한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해양어류에 대한 박물학적인 접근은 주로 類書類에서 찾을 수 있다. 17세기와 18세기에도 박물학적인 접근이 있었지만, 19세기에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五洲衍文長箋散稿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名物學19세기에 발달했던 것도 이런 사실을 보여준다.

 

일본은 고대부터 바닷물고기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일본 해양어류지식의 발전에 결정적인 작용을 했던 것은 本草書였다. 17세기 초반 本草綱目이 전래되면서, 본초학이 크게 발전했다. 17세기 후반의 本朝食鑑은 어류를 새롭게 분류했고, 방언과 민간의 전승을 적극 채용하는 등 독자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18세기 초반의 大和本草가 일본 본초학의 자립을 선언했다면, 19세기 초반의 本草綱目啓蒙은 독자성의 완성을 의미한다. 어류지식에 한정할 때, 일본의 해양어류박물학은 중국과 조선을 뛰어넘고 있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17세기를 전후한 시기는 동아시아 해양어류지식의 발전과정에서 하나의 轉機였다. 약물본초인 本草綱目과 임상의학인 東醫寶鑑은 본초학의 정점이었다. 이후에 중국과 조선에서는 이것을 뛰어넘는 저술들이 나오지 않았다. 이에 반해 일본은 본초강목과 동의보감의 영향을 받으면서 본초학을 박물학의 단계로 발전시켰다. 18세기에 이르면, 그 수량과 질적인 면에서 일본의 해양어류지식은 중국과 조선을 압도했다. 이런 사실은 어보의 역사에서 그대로 증명될 터이다.

 

유의해야할 것은 해양어류박물학이 단순히 물고기에 대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한 사회에서 바다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동아시아 지성사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앞으로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