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mate & History/[동아시아 소빙기 연구실](2013-14)

[2014] '귤화위지'와 중국의 기후변동

블루트레인 2014. 11. 21. 22:05

 

 

 

 

 

[국문초록]

 

귤화위지로 상징되는 감귤재배북방한계의 변화는 중국 기후변동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지난 5천 년 동안 기후는 끊임없이 변동했다. 이에 따라 감귤재배북방한계도 북상과 남하를 반복했다. 춘추시대에는 회수가 경계였다. 기원전 2세기에는 장강으로 남하했지만, 오늘날보다는 온난했다. 남북조시대의 한랭기를 거쳐, 수당시대의 온난기에는 오늘날보다 따뜻하여 회수까지 북상했다. 동정산이 중국 제일의 감귤생산지가 되었던 것은 이러한 온난화 덕분이었다. 송대에도 중세온난기(Medieval Warm Period)’가 계속되어 온난했다. 그 중 12세기는 매우 한랭하여 감귤의 북방한계는 장강까지 남하했다. 13세기는 온난하여 회수까지 북상했다. 소빙기가 시작되면서 북방한계는 다시 남하했다. 17세기에는 특히 한랭하여, 강남보다 훨씬 아래인 강서, 호남, 안휘, 절강의 감귤마저 동사했다. 소빙기 동안 감귤의 북방한계는 위도 상 2~3도 가량 남하했다. 이것은 당시가 얼마나 한랭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감귤재배 북방한계의 변화는 거대한 생태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인간의 역사는 이러한 거대한 변화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맺음말]

 

당대의 진장기(陳藏器: 687757)옛날에 강남에서는 귤이 되고, 강북에는 탱자가 된다고 했다. 지금 강남에는 탱자와 귤이 있다. 강북에는 탱자는 있지만 귤은 없다. 이것들은 스스로 다른 종류이다. 관여하여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귤이 탱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귤화위지가 의미하는 것은 작물은 기후와 풍토에 의해 생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귤화위지로 상징되는 감귤 북방한계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기후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귤화위지의 고사에서 확인되듯이, 감귤의 북방한계는 북상과 남하를 반복해왔다. 춘추시대 회수가 경계가 되었던 것이 기원전 2세기경에는 장강으로 남하했지만, 여전히 오늘날보다는 따뜻했다. 남북조시대의 한랭기를 거쳐, 수당온난기가 시작되는 6세기 중반에는 남경에 귤이 재배될 정도로 기후는 회복되었다. 당대는 8세기 중후반 감귤의 북방한계가 남하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오늘날보다 따듯하여 회수까지 북상했다. 동정감귤이 중국 제일의 감귤생산지가 되었던 것은 이런 온난화의 덕분이었다. 송대에도 중세온난기가 계속되어 대체로 온난했다. 그 중 12세기는 매우 한랭하여 감귤의 북방한계는 장강까지 남하했다. 이로 인해 동정감귤은 두 차례의 동해기록을 남기면서, ‘천하제일의 명성으로 온주밀감으로 넘겨줬다. 이어지는 13세기에는 기후가 완연히 회복하여 회수마저 뛰어 넘을 정도였다.

이러한 재북상은 소빙기가 시작되면서 급격하게 남하했다. 15세기 중후반부터 동정감귤은 잦은 동해를 당하면서 생산이 급락하여 보다 남쪽의 강서, 구주, 복건의 감귤이 강남에 유통될 정도였다. 소빙기의 한랭화가 절정에 달했던 17세기 후반에는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혹한으로 여러 차례의 동해를 입으면서 동정감귤은 사실상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이때는 강남의 감귤뿐만 아니라, 15세기 중후반 이후 강남의 감귤을 대신했던, 훨씬 이남의 강서, 구주, 호남, 안휘의 감귤마저 동사했다. 명청시대에는 감귤의 북방한계가 장강마저 뛰어넘어 위도 23도 정도나 남하했던 것이다. 장강과 회수를 사이로 오르내리며 반복되던 감귤 북방한계의 역사를 볼 때 확연한 변화였다.

 

둘째, 흔히들 정상적인 기후(normal climate)’를 변화 없는 항상적인 기후로 이해한다. 인간이 기후를 인식할 수 있는 기간은 자신의 생애 수십 년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기후의 평균적인 상태를 정상적으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후는 언제나 변화해 왔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비정상적(abnormal)’인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기후가 변화한다는 것, 그 자체는 지극히 정상적인현상이다. 다만 그 변화의 폭이 인간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워낙 지대하기 때문에 두려움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인식하는 정상적인 기후도 기후변동이라는 거대한 너울 속에 있는 작은 점들에 지나지 않는다. 감귤 북방한계의 변화는 장구한 시간 속에서 기후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셋째, 지금보다 따뜻했던 중세온난기가 중국에도 있었다. 중세온난기의 존재여부는 기후학자들에게 논란의 대상이었다. 축가정은 일찍이 유럽의 중세온난기(9001300)에 대응하는 수당온난기(6001000)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의 주장대로면, 중국의 수당온난기와 유럽의 중세온난기는 시기적으로 300여 년의 차이를 보인다. 이에 대해 정덕이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중국도 유럽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중국도 온난기를 경험했다고 했다. 그 중요한 근거가 바로 감귤 북방한계의 대대적인 북상이다. 비록 8세기 중후반과 12세기에는 장강까지 남하하기도 했지만, 당대부터 원대초반까지의 대부분 시기에 감귤의 북방한계는 회수부근까지 확장되었다. 당시 감귤재배가 가능했던 지역들은 오늘날 감귤 북방한계보다 더 북쪽에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그때보다는 따뜻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유럽에서는 기원전후 각각 200년간을 로마기후최적기에는 중세온난기보다 더 온난했다. 중국에서는 전한과 후한에 해당하는 이 기간 동안 감귤의 북방한계는 춘추시대의 회수에서 장강으로 내려왔지만, 현재보다는 여전히 따듯했다. 이런 사실들은 오늘날 인류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지구온난화 논의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끝으로 귤화위지로 상징되는 감귤재배 북방한계의 변화는 거대한 생태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인간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거대한 생태환경의 변화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