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단상(歷史斷想)/백범일지를 읽다

백범일지를 읽다1: 호랑이 지나다니다

블루트레인 2012. 1. 6. 00:48

백범일지를 읽다1: 조선의 호랑이를 기리며

 

 

지난 달 우연한 일이 생겨『백범일지』를 오랜만에 다시 완독했다. 『백범일지』를 처음 접했던 것이 대학생 때이니 벌써 십수년이 지났다. 그동안 머리가 굵어진 것일까? 이전에 일종의 '의무감'으로 읽었을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백범, 그 자신이 기록한 그의 생애가 때론 코믹하게 때론 애잔하게 가슴을 두드린다. 이전에 그의 위대성을 찾으려고 보았을 때와는 달리 독립운동의 "궁핍"한 모습이 보다 선명하게 눈에 박힌다. 이국 땅에서 모질고 거친 바람을 맞으면서 끝까지 뜻을 꺽지 않은 그들의 모습이 가슴 아리게 위대하다. 『백범일지』에서 백범은 자신의 "찌질"했던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것 또한 그의 인품이었으리라. 

  

다시 보는『백범일지』에는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때론 끽끽대고 때론 가슴을 때린다. 내가 첫번째로 흥미를 느낀 부분은 엉뚱하게도 그가 다섯 살 때 옮겼던 집 앞으로 시도때도 없이 호랑이가 지나다녔다는 이야기이다. 

 

  다섯살 때(1880) 우리집은 종조부, 재종조부, 삼종조부 댁 등을 따라 강령군 삼가리로 이사하여 두 해를 살았다. 그곳은 앞은 바다요 뒤는 산이었다. 우리집은 적막한 산 입구 호랑이 길목에 있어서 밤에는 종종 호랑이가 사람을 물고 우리집 문 앞으로 지나가므로 문 밖을 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낮에는 부모님이 농사일이나 해산물을 채취하려 나가시면 나는 이웃 동네 신풍 이생원 댁에 가서 그집 아이들과 놀다 오는 것이 일과였다.

 

인간의 농지개발, 연료채취에 따른 산림파괴가 역사에 미친 영향에 관심이 깊은 내게 이 기사는 눈에 꽃혔다. 만약 우리가 3~4백년 전의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다면 그때의 밤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밤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조선시대 내내 호랑이는 조선의 백성들과 함께했다. 『수호지』에서 무송이 경양강에서 호랑이를 때려잡은 이야기처럼 호랑이는 조선 곳곳에 출몰했고 때론 인명을 위협했다. 백범이 회고하듯, 조선 방방곡곡의 많은 곳이 낮에는 인간의 세상이었지만 밤에는 호랑이의 세상이 되었다고 상상해보라. 

 

그렇지만 호랑이와 인간의 이러한 공생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백범이 어렸을 때 보았던 조선 호랑이의 운명은 조선과 운명을 같이 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탄한 이후 해로운 맹수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마구잡이 호랑이 사냥을 진행했다. 그 결과 한반도를 호령하던 호랑이는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멸종해버렸다. 

 

조선 땅에서 호랑이를 멸종시키면서 일제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호랑이 사냥은 그 자체로 자연에 대한 근대적 폭력을 상징한다. 조선시대 내내 백성을 괴롭혔던 호랑이를 일제는 단시간 내에 끝장내버렸다. 백성들을 두렵게 하던 호랑이라는 '자연의 힘'을 짓이겨버린 그들은 자연의 힘 위에 있는 그들의 '폭력'을 여실없이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칠 정도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본인'에 의한 조선 호랑이 사냥. 그것은 일제시대가 그 시발점이 아니었다. 역사는 오래전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토 기요마사. 그가 조선에서 사냥한 호랑이를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다는 이야기는 임진왜란의 중요한 무용담으로 일본인들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주지하듯이 일본 열도에는 호랑이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호랑이의 용맹함은 일본인들에게 경이로움이었다. 가토 기요마사가 사로잡은 것은 호랑이가 아니었다. 외세에 굴하지 않는 조선의 용맹함이었다. 

 

 

기요마사 호랑이를 잡다(1899). 임진왜란 중에 조선 호랑이를 잡는 가토 기요마사의 모습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조선을 병탄하려는 그들의 야욕이 커져갈 때 임진왜란은 우키요에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그 중 기요마사의 호랑이 사냥은 곧 조선이라는 나라를 사냥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기요마사의 창에 놀라는 조선 호랑이의 다급함을 보라.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던 조선의 모습이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뒤에 한반도 전역에서 펼쳐진 호랑이 사냥은 가토 기요마사의 호랑이 사냥을 상징적으로 잇는 것이었다.    

 

 

호랑이는 길들여지지 않는 조선의 야수성이었다. 일제에 의한 호랑이 사냥은 이제 이러한 야수성, 곧 '야만'에 대한 '문명'의 승리이자, 그 자체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승리를 의미했다. 임진왜란 때 그들이 꺽지 못했던 조선의 의병들. 일제강점 한 해전에 그들은 '남한대토벌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항일의병들을 전라도에 몰아서 몰살시켰다. 조선의 용감한 '호랑이'(항일의병)들은 그렇게 사라져갔던 것이다. 이제 자연 속의 호랑이만 제거하면 조선의 의기는 완전히 꺾을 수 있었다. 

 

백범이 어렸을 때 보았던 호랑이와 그의 후손들도 일제 사냥꾼들에 의해 하나 둘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백범일지』에 실린 호랑이 이야기가 가슴 시린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