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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황하결빙, 농민반란 확대되다

블루트레인 2011. 12. 10. 03:22

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20> 황화 결빙, 농민반란 확대시키다
얼어붙은 황화 넘은 明 반란군 중원 쇄도

 

[국제신문] 9월 1일

 

 

송대 마원(馬遠)이 그린 '황하역류(黃河逆流)'.

 

 

"우리들은 모두 어진 백성들입니다. 섬서 지역의 기근과 가뭄으로 큰 죄를 짓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귀순하여 항복하기를 맹세하니, 고향으로 압송하여 돌려보내 생업을 회복케 해 주십시오." 1633년 12월 농민반란군들은 위기에 빠져있었다. 섬서 북부를 중심으로 불타올랐던 농민반란은 한 해 전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진행되면서 큰 타격을 입어 전장은 산서 지역으로 옮겨져 있었다.

관군의 주도면밀한 작전에 휘말려 농민군의 활동무대는 점차로 줄어들어 마침내 포위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짓 항복이었고 그것은 유효했다. 관군이 보고를 올려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 공격이 멈추었던 것이다. 그들은 때를 기다렸다. 황하가 얼어붙기를.

정묘호란, 병자호란 때에 압록강 결빙이 가지는 군사적 의미를 지난 회에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떠했을까? 중국에는 황하가 있었다. 유목민이 중국을 침략할 때 황하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거대한 장벽, '천험(天險)'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천험'도 손쉽게 허물어지는 때가 있었다. 혹한의 겨울로 황하가 꽁꽁 얼어붙었을 때, 유목민 기병은 황하를 건너 중국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었다. 돌궐, 거란, 여진, 몽골 등 유목민이 중국을 침략할 때는 대부분 황하의 결빙에 맞추어져 있었다. 황하가 얼어붙었을 때 재빨리 약탈을 하고 얼음이 녹기 전에 되돌아가는 방식이다. 여기에 철저했던 것이 바로 여진족이었다.

1127년 북송의 흠종과 휘종, 두 황제가 금나라에 끌려가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정강의 치욕,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금나라 기병이 얼어붙은 황하를 건너 곧바로 수도인 개봉에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500년이 흐른 뒤 그들의 후손들도 이런 방식에 익숙했다.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 후금은 두 차례에 걸쳐 산동 남부까지 깊숙이 공격해 왔다. 그것은 하나 같이 황하와 운하가 결빙하는 한겨울이었다.

이처럼 황하는 만리장성을 이은 제2의 방어선이었지만, 혹한의 겨울에는 오히려 위협이 되었다. 그렇기에 황하의 방어는 중요했다. 몽골의 침략이 빈번했던 16세기 중반 명나라는 지역민을 동원하여 황하의 얼음을 깨어 부수게 했다. 소빙기라는 기후변동을 염두에 두면 그 효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1595년 선조와 비변사가 압록강 방어를 위해 제기했던 '빙장(氷墻)'과 '녹각성(鹿角城)'도 모두 황하의 방어를 위해 중국에서 이미 시도되었던 것들이다.

1633년 말에서 이듬해 초까지의 한겨울, 황하의 결빙은 농민반란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겨울은 유난히 혹독하여 거센 물살에 도저히 얼지 않는 용문마저 얼어붙어 뭍과 물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농민군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용문(龍門)에서 아래쪽은 그 흐름이 격렬하여 비록 엄동이라도 얼 수가 없는데, 이 해 겨울에서 다음 해 봄까지 돌처럼 단단하게 얼었다. 유적(流賊) 12지파가 얼음을 타고 마침내 건넜는데, 황하가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그 기세는 종기가 터져 사방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이것은 명말 농민반란의 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섬서와 산서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농민반란이 '중원'으로 확대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황하와 양자강 사이 중국의 광대한 중앙지역이 반란의 주요무대가 되었다. 종기가 터져 사방으로 번진 것이다. 명말청초의 문인 오위업은 곤궁에 처했던 농민군이 얼어붙어 황하를 건넌 지 10년 만에 명나라가 멸망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17세기 전반 소빙기의 겨울 혹한은 동아시아의 전란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농민반란군의 확대, 후금의 중국 내지 침략은 모두 강, 운하, 호수의 결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것이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