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강원도의 한, 강원도의 힘
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13> 강원도의 한, 강원도의 힘
17세기 강원도, 혹한 시달려…21세기엔 세계를 놀라게 해
[국제신문] 2011년 7월 14일
고지도인 조선도(朝鮮圖)에 그려진 평창. 일본 오사카부립도서관 소장. 18세기 후반.
344년 전 6월 강원도 평창에는 서리가 내렸다. 1667년, 그 해의 기후는 오늘날 관점에서 확실히 '이상'했다. 초봄에 내린 폭설로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에서 눈에 깔려 죽은 사람만 60명이 보고되었다. 4월 하순 전라도 담양에는 많은 서리가 눈처럼 내렸고, 또 싸락눈이 내렸다. 5월에서 6월까지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에 서리와 눈이 내렸다는 보고가 거듭 올라왔다. 온천 행궁에 있던 현종과 그를 모시던 사람들은 차가운 날씨에 솜옷을 껴입어야했다. 그렇지만 17세기의 기록들을 보면 이때의 이상 한랭현상은 다른 해에 비해 그다지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다.
1651년 6월 경상도에 얼음이 얼고, 안동과 예안에는 흰 눈이 산을 덮은 풍경이 보고되었다. 1686년 초여름 전국 팔도에 눈과 서리가 내렸는데, 9월 하순 진주에는 눈이 내려 제비와 참새가 동사했고, 한 달 여 뒤 제주도는 얼어 죽은 소와 말이 2900여 마리였다. 남부지역마저 혹독한 한랭현상을 경험하고 있을 때 강원도의 기후가 어떠했는지는 쉽게 예상이 될 것이다.
강원도의 강추위를 잘 보여주는 것은 동해의 결빙이다. 조선시대 함경도와 강원도 바다의 결빙은 10차례 정도 있었다. 19세기 말의 1차례를 제외하면 모두 16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집중되어 있다. 강원도 앞바다는 명종 때 1차례, 효종 때 2차례, 숙종 때 2차례가 확인된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1709년이다. 1월 중순께 시작되어 40여 일 동안 계속된 결빙은 너비 20㎞에 이르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해 7월 한여름에 간성의 앞바다가 너비 10여 발이나 얼었다는 사실이다.
시선을 지중해로 돌리면 강원도 앞바다가 20㎞나 얼어붙었던 바로 그때 프랑스 리옹의 쏜강은 바닥까지 얼어붙고, 남부의 올리브와 포도나무가 동사했다는 기록을 만나게 된다. 유럽의 어느 역사학자는 그 해 한랭화로 인한 리옹의 대기근을 '슬픔의 해(Year of Sorrows)'로 표현했다.
1709년 프랑스 리옹의 혹한과 대기근을 기록한 그레고리 모나한의 책
'슬픔의 해(Year of Sorrows)' 표지(1993년 발행).
17세기 동안 강원도는 '슬픔의 해들(Years of Sorrows)'이라 이름 붙여야 할 정도로 혹한과 이상 한랭현상이 심했다. 그렇기에 조정에서는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는 등 이상기후가 나타나면 쉬이 '한(恨)'을 이야기했다. 명종 16년(1561) 평창 군수 양사언은 첩첩산중 평창의 곤궁함을 마음 아파했다. "백성들은 모두 굴에서 짐승처럼 사는데 섶을 묶어 구멍을 가리고 비탈 밭을 일구어 위태롭게 수확하며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엉클어진 머리에 귀신의 얼굴을 하고 옷은 해져서 몸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40호에 불과한 백성들이었다. 건국 초기 500여 호에서 현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56년 뒤 동부승지 이홍주는 "큰 산과 긴 골짜기에 둘러싸여 온 종일 길을 가도 인적을 볼 수 없는" 평창에 17호만 남아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의 표현대로 "참으로 영서 지방의 궁벽한 곳", 그 평창이 2011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강원도는 한이 서린 곳이다. 평창 이웃에는 정선아리랑이 있고, 단종의 슬픔이 있다. 평창에는 중종의 아들로 역모로 몰려 울진으로 귀양가던 중 머물다 죽임을 당한 봉선군 이완의 애잔한 이야기가 있다. 이런 평창이 이제 세계인을 기쁘게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강원도의 한은 강원도의 힘이 되었다.
올 초의 추위는 유난히 혹독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올림픽실사에는 큰 도움을 주었다. 온난화가 진행되는 오늘날 2018년의 겨울을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때만은 17세기처럼 추워도 기꺼워할 것이다. 다만 들으니 평창 73%의 땅이 이미 타지인의 손에 넘어 갔다고 한다. 온 국민, 아니 인류가 함께할 '축제'를 자신들의 '축재(蓄財)'의 장으로 삼으려는 그들은 누구인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눈을 부릅떠야 할 때이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