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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얼음 깨는 노래(打氷詞)' 17세기의 겨울 풍경들

블루트레인 2011. 12. 2. 01:39

 

[국제신문] 2011년 7월 7일

 

 

1683~1684년 겨울 템스 강 빙상시장을 그린 그림. 이 시장에는 인쇄소가 있었는데, 템스강 빙상시장 그림을 찍어 판매했다. 이 그림은 당시 현장에서 판매된 작품이다.

 

 

며칠 전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태양 흑점 활동이 감소하여 영국이 평균 2도 정도 낮아질 수 있으며, 앞으로 50년 안에 1645~1715년의 소빙기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과학자의 경고를 전했다. 1645~1715년은 몬더 미니멈(Maunder Minimum)으로 알려진 태양의 흑점 활동이 거의 정지되었던 시기이자 소빙기의 한랭현상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이다. 그때의 혹한이 우리시대에 다시 온다면 어떻게 될까?

템스 강의 빙상시장은 오랫동안 소빙기를 상징해왔다. 빙상시장의 상점에는 인쇄소가 있어 당시 풍경을 기념으로 찍어 팔았다. 〈그림〉도 그 일부이다. '대영제국의 경이로움', 바로 1683~1684년 겨울 템스 강의 빙상시장이다. 지난주 이 지면에 소개된 에이브러햄 혼디우스의 그림에서 이미 보았던 장면이다. 그림에는 말 탄 사람, 마차도 등장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얼어붙은 강위에 배를 끌고 다니는 모습일 것이다.

개념은 다르지만 얼어붙은 강에서 '얼음을 깨고' 배를 끌고 가는 광경은 중국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7세기에는 아열대에서도 이런 모습이 발견된다는 것이 이채롭다.

중국 강남은 '수향(水鄕)'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물길이 주된 교통로였다. 17세기 동안은 혹한의 겨울이 이어져 강과 호수가 결빙하는 일이 잦았다. 저명한 학자 육세의는 1666년 겨울 풍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아침부터 얼음 깨기, 저녁까지 얼음 깨기. 얼음 깨는 곳곳마다 띵띵띵 소리. 얼음 1척을 열면 한 걸음 나아가나니, 뱃머리에 얼음기둥 셀 수 없이 드리웠네." 그는 강과 호수가 얼어붙자 얼음을 깨서라도 배를 움직이려 하지만 곧바로 얼어버려 배가 움직일 수 없음을 한탄했다.

24년 뒤, 소주에 정착했던 사신행의 노래는 더욱 선명하다. "차가운 빛 내를 비추니 쇠를 씻겨내는 듯, 수 천 수 만 척의 배들 단단한 돌에 박혀버렸네. 산을 뚫어 길을 통하는 것은 예부터 있었지만, 하백(河伯)이 견고함으로 버티니 개미도 구멍 내기 어려워라." 그해 겨울 날씨는 매우 혹독했다. 아열대의 동정호 파양호 양자강 전당강이 꽁꽁 얼었다. 감귤은 대부분 동사하고, 열대인 해남도는 한파로 빈랑과 야자마저 시들어버렸다.

이런 강추위에 물길이 돌이나 쇠처럼 단단하게 얼어 배가 움직일 수 없었다. 사신행은 뱃머리에서 얼음을 깨뜨리면 곧바로 배꼬리에서 얼어버려 결국 강 한가운데서 꼼짝달싹 못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그는 이런 시도를 "장차 사람의 힘으로 하늘과 겨루려고 하면, 은하수를 엎어 물을 쏟아 부어야 하리"라 노래했다. 얼음을 깨뜨리기보다는 차라리 은하수를 엎어 물을 대는 것이 빠를 것이라는 것이다. 강남에서 '타빙사(打氷詞)', 곧 얼음 깨는 노래는 17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아열대의 강과 호수에서 얼음을 깨고서라도 배를 운행하려는 풍경이야말로 혹독한 소빙기의 겨울을 잘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영국 템스 강에서 빙상시장이 열리고, 중국 아열대인 강남에서 배를 띄우기 위해 얼음 깨기가 행해지고 있을 때 조선의 강과 호수도 단단하게 얼었다. 평안도와 황해도 앞바다는 거의 언제나 부빙이 넘쳐났고, 강화도 갑곶은 결빙으로 배의 운행이 불가능했다. 당시 조선의 혹한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동해의 결빙이다. 동해는 여러 차례 얼어 조정을 놀라게 했다. 1645~1715년의 소빙기가 돌아온다면 다시 보게 될 장면들이다.

 

지구온난화가 세계적 이슈인 오늘날, 한편에서는 소빙기가 곧 닥칠 것이라 경고한다. 어느새 과학자들은 미래 예언자임을 자임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너무나 다르다. 지난 1000년간 기후변동은 과학적 논쟁만큼이나 기후연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기후의 미래에 대한 대안은 오히려 과거일지도 모른다. 역사야말로 '오래된 미래'가 아니던가!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