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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소빙기의 템스 강, 17세기의 겨울 풍경들
블루트레인
2011. 12. 2. 01:34
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11> 소빙기의 템스 강, 17세기의 겨울 풍경들
얼어붙은 강 위의 빙상시장, 낭만보다는 생존문제 봉착
[국제신문] 2011년 6월 30일
에이브러햄 혼디우스의 그림 '템스 강의 빙상시장'(1684년 1월 31일).
우리는 327년 전 런던 사우스 뱅크 앞에 서있다. 멀리 맞은편 가운데 미들 템플이 보인다. 오른편에는 12세기에 세워진 둥근 템플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왼쪽 끝에는 성 클레멘트 데인 교회의 첨탑이 하늘로 솟아있다. 1684년 1월의 마지막 날 국왕 찰스 1세와 그의 가족들은 몇 주 동안 계속되어 온 새로운 '축제'를 보기 위해 이곳을 들렀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에이브러햄 혼디우스가 그 광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림을 보면 중앙에 길게 늘어선 칸막이 텐트들이 눈길을 끈다. 오른쪽에는 군인들이 열을 지어 의전행사를 벌이고 있다. 사람들은 말을 달리고, 마차를 끌며 여러 놀이를 즐긴다. 자세히 보면 큰 돛을 가진 배들도 보인다. 광장에 돛 달린 배? 뭔가 이상하다. 런던 어느 곳에 이렇게 드넓은 광장이 있을까? 사실 눈앞에 펼쳐진 '광장'은 얼어붙은 템스 강이다. 1683~1684년 겨울 템스 강이 꽁꽁 얼어붙자 사람들은 그 위에 간이천막을 치고 상점을 열어 축제를 벌였던 것이다. 이것을 '빙상시장(frost fair)'이라고 했다.
템스 강이 결빙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소빙기 동안 템스 강은 여러 차례 얼어붙었다. 15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23차례의 완전결빙이 있었는데, 17세기는 모두 10차례에 이른다. 17세기 동안 이런 혹한은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론 강은 한때 대포나 마차가 건널 정도로 두껍게 얼었다. 지중해 북부의 마르세유 앞바다도 몇 차례 얼어붙었다. 지중해의 올리브 재배지는 빈번한 동해를 견디지 못하고 보다 따뜻한 남쪽의 경쟁지역으로 주도권을 넘겨줘야 했다. 그 중 1683~1684년 겨울은 지난 수백 년 사이에 가장 추웠던 한 해로 기억된다. 그 해 영국해협을 따라 영국과 프랑스의 해안에는 폭 5km의 얼음 띠가 만들어졌으며, 네덜란드 북해 연안은 30~40km의 얼음 띠가 형성돼 선박의 운항을 불가능하게 했다. 중국 아열대의 태호도 얼어붙어 사람들은 호수 위를 걸어서 다녔다.
영국인들에게 템스 강이 꽁꽁 얼어붙은 광경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상점에서는 커피와 브랜디 등 각종 물품들이 거래됐다. 한편에서는 여우사냥과 황소를 묶어놓고 개를 풀어 괴롭히는 놀이를 즐겨했다. 축구, 나인핀스 등의 스포츠뿐 아니라 장작 바비큐를 즐기기도 했다. 템스 강은 겨울의 '경이로움'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도시생활의 중심이 됐다.
그렇지만 빙상시장은 낭만적인 것이지만은 않았다. 템스 강이 얼어붙어 선박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폭설로 도로망이 막히자 런던의 물가는 폭등했다. 도시의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서 빙상시장은 도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그렇기에 낭만 이전에 생존의 문제였다.
혼디우스는 8년 전에도 템스 강의 결빙을 그렸었다. 거기에는 챙이 큰 모자를 쓴 사람들이 특이한 신발을 신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스케이트였다. 피테르 브뤼헐의 그림들에서 보듯 네덜란드에서 스케이트는 16세기 후반에는 이미 일상이 되어 있었다. 영국에 스케이트가 처음 소개된 것은 1662년의 템스 강 결빙 때였다. 그럼에도 1683~1684년 겨울까지도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은 여전히 네덜란드 사람들이었다. 물론 영국인들이 이 새로운 스포츠를 받아들이는 데는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18세기 초에는 영국인들도 이를 즐기게 된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그림을 보면 중앙에 길게 늘어선 칸막이 텐트들이 눈길을 끈다. 오른쪽에는 군인들이 열을 지어 의전행사를 벌이고 있다. 사람들은 말을 달리고, 마차를 끌며 여러 놀이를 즐긴다. 자세히 보면 큰 돛을 가진 배들도 보인다. 광장에 돛 달린 배? 뭔가 이상하다. 런던 어느 곳에 이렇게 드넓은 광장이 있을까? 사실 눈앞에 펼쳐진 '광장'은 얼어붙은 템스 강이다. 1683~1684년 겨울 템스 강이 꽁꽁 얼어붙자 사람들은 그 위에 간이천막을 치고 상점을 열어 축제를 벌였던 것이다. 이것을 '빙상시장(frost fair)'이라고 했다.
템스 강이 결빙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소빙기 동안 템스 강은 여러 차례 얼어붙었다. 15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23차례의 완전결빙이 있었는데, 17세기는 모두 10차례에 이른다. 17세기 동안 이런 혹한은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론 강은 한때 대포나 마차가 건널 정도로 두껍게 얼었다. 지중해 북부의 마르세유 앞바다도 몇 차례 얼어붙었다. 지중해의 올리브 재배지는 빈번한 동해를 견디지 못하고 보다 따뜻한 남쪽의 경쟁지역으로 주도권을 넘겨줘야 했다. 그 중 1683~1684년 겨울은 지난 수백 년 사이에 가장 추웠던 한 해로 기억된다. 그 해 영국해협을 따라 영국과 프랑스의 해안에는 폭 5km의 얼음 띠가 만들어졌으며, 네덜란드 북해 연안은 30~40km의 얼음 띠가 형성돼 선박의 운항을 불가능하게 했다. 중국 아열대의 태호도 얼어붙어 사람들은 호수 위를 걸어서 다녔다.
영국인들에게 템스 강이 꽁꽁 얼어붙은 광경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상점에서는 커피와 브랜디 등 각종 물품들이 거래됐다. 한편에서는 여우사냥과 황소를 묶어놓고 개를 풀어 괴롭히는 놀이를 즐겨했다. 축구, 나인핀스 등의 스포츠뿐 아니라 장작 바비큐를 즐기기도 했다. 템스 강은 겨울의 '경이로움'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도시생활의 중심이 됐다.
그렇지만 빙상시장은 낭만적인 것이지만은 않았다. 템스 강이 얼어붙어 선박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폭설로 도로망이 막히자 런던의 물가는 폭등했다. 도시의 기능이 마비된 상황에서 빙상시장은 도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그렇기에 낭만 이전에 생존의 문제였다.
혼디우스는 8년 전에도 템스 강의 결빙을 그렸었다. 거기에는 챙이 큰 모자를 쓴 사람들이 특이한 신발을 신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스케이트였다. 피테르 브뤼헐의 그림들에서 보듯 네덜란드에서 스케이트는 16세기 후반에는 이미 일상이 되어 있었다. 영국에 스케이트가 처음 소개된 것은 1662년의 템스 강 결빙 때였다. 그럼에도 1683~1684년 겨울까지도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은 여전히 네덜란드 사람들이었다. 물론 영국인들이 이 새로운 스포츠를 받아들이는 데는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18세기 초에는 영국인들도 이를 즐기게 된다.
돌이켜보면 80~90년 전까지 한강에는 스케이트 경기가 열렸다.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찾기 어렵다. 다시 소빙기의 혹한이 온다면 한강위에 펼쳐지는 김연아의 아름다운 피겨를 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것이다. 올 초 우리들은 겨울 혹한의 일면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