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트레인 2011. 12. 2. 01:10

김문기의 널뛰는 기후, 춤추는 역사 <9> 마녀사냥과 소빙기
날씨가 나빠 흉작일때 마녀사냥 급증

 

[국제신문] 2011년 6월 16일

 

 

마녀사냥 모습을 담은 피터르 브뤼헐의 '교수대 위의 까치'

 

 

"아들라브 산에서 마녀들이 연회를 열고 춤을 추었다. 이 때문에 집들이 무너지고 포도농장과 농경지가 황폐해졌다. 이런 날씨는 마녀들이 만든 것이다." 1582년 7월 독일 서남부 한 지방의 기록은 마녀들이 기후를 나쁘게 만들어 포도농사를 망치게 되자 18명의 아이와 5명의 임산부가 처형되고, 3개월 뒤에 다시 6명의 마녀가 체포돼 처형됐다고 전한다. 포도의 흉작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두 29명의 여성이 희생당한 것이다. 포도생산과 마녀사냥, 얼핏 관계없어 보이는 둘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5세기였다. 1487년 출판된 한 편의 책은 이후 200여 년 동안 마녀사냥의 광풍을 불러오는 신호탄이 되었다. '마녀들의 망치(Malleus Maleficarum)'.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의 칙령으로 북부 독일을 관할하고 있던 두 명의 이단재판관이 쓴 이 책은 마녀가 이단인 이유를 증명하고, 마술을 행하는 방법들과 그 대응책, 마녀를 색출하여 고문하고 판결하는 모든 과정에 대해 상세한 지침을 담고 있다.

 

마녀사냥이 진행되면서 수십 혹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됐다. 이런 마녀사냥이 300여 년 동안 유럽사회를 휘몰아친 원인은 무엇일까? 교황권에 대한 저항, 종교적 갈등, 여성에 대한 증오 등이 뒤엉켜 있지만 그 배경에는 소빙기 기후변동이 있었다. 마녀사냥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후반으로 소빙기의 추위가 절정에 달했던 때였다. 런던의 템스 강과 네덜란드의 운하, 심지어 지중해 북부의 바다도 여러 차례 얼었다.

동아시아에서 감귤처럼 포도는 유럽의 기후변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세 온난기 동안 감귤재배의 북방한계는 북상하여 11세기에는 엘베 강 하반, 12세기에는 폼메른에 이르러 발트해 연안에서도 포도재배가 가능했다. 노르웨이와 영국의 남부에도 포도농원이 확대됐다. 그렇지만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동안 포도농원은 크게 남하했다. 한랭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포도 수확일은 늦어졌고 품질은 낮아졌다. 독일은 1550년께부터 수확량이 감소하기 시작하여 1650년께는 포도농원의 면적이 6분의 1로 줄어들었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스위스의 베른 등 전통적인 포도재배지역에서 농원은 황폐해졌고, 영국은 사실상 전멸했다.

흥미로운 것은 포도의 수확량이 좋지 않았을 때마다 마녀사냥은 늘어났다는 점이다. 추운 날씨가 계속되면서 포도뿐만 아니라 밀 등의 작물생산에도 타격을 주었다. 교회의 십일조는 급격히 감소했으며 빈번한 재해와 연이은 흉작으로 사회적 위기는 고조됐다. 당시 사람들에게 변덕스러운 날씨, 추운 겨울, 서늘한 여름, 때 아닌 서리와 우박 등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불가사의를 납득시켜줄 희생양이 필요했다.

여성에 대한 비이성적인 혐오로 가득 찬 '마녀들의 망치'는 마녀들이 어떻게 비바람을 일으키고 농작물을 상하게 하고 번개를 내리치고 해일을 일게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1670년대 이후 마녀사냥에 대한 회의론이 일어나기 전까지 마녀들이 날씨를 조정한다는 인식은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했다. 그들에게 소빙기의 나쁜 날씨는 전적으로 마녀들의 저주 때문이었으며, 따라서 그들의 마녀사냥은 너무나 정당한 것이었다.

당시 행해졌던 가학적인 고문과 광기어린 대량학살은 오늘날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인류 역사 속에서 정치적,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던가? 마녀사냥의 광풍을 목격했던 파스칼의 다음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사람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행동할 때보다 더 기쁘고 용감하고 철저하게 악을 행하는 일은 없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